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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사과 김진우 Oct 22. 2023

통섭과 융합

체육관에서 떠오른 단어가 통섭과 융합이라니. 황당하지만 진짜다. 체육관에서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책을 읽는 사람을 봤다. 벌써 1시간째 같은 자세다. 운동하면서라도 읽어야 할 시급한 책일까? 러닝머신 앞 TV 대신 볼거리가 필요했나? 독서는 모르겠지만 운동이 될까? 괜한 오지랖으로 상상을 이어가다 번쩍하며 큰 깨달음이 왔다. 최근 대학가에서 부르짖는 통섭과 융합! 바로 저런 거 아닐까? 운동하면서 책을 읽으라는.     


통섭과 융합, 요즘 이 두 단어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통섭과 융합이라는 미명하에 학과 간, 전공 사이의 벽을 유연하게 혹은 아예 없애버리라고 한다. 명분은 글로벌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 AI 시대에 걸맞은 인재 양성이다. 복수전공, 다전공, 융합전공, 자율전공 등 명칭도 다양하다. 2개의 학위를 받아 졸업하자는 플래카드가 캠퍼스 구석구석에 휘날린다. 그렇게 하는 학과나 전공에 자본이 집중된다. 학생들에게 인기 없고 대기업이 선호하지 않는 학과는 구조조정 1순위다. 명칭에서부터 우선 사라진 문사철은 글로벌, 미디어, 융합, 디지털, 콘텐츠 등의 단어와 전후 맥락 없이 짝지어져 기억하기조차 어려운 기다란 이름의 학과가 되었다. 다른 의견을 내거나 속도를 조절하는 학과나 전공은 시대착오적인,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학교 발전에 방해가 되는 집단이다.      


일단 나는 정책 입안자나 실행자 모두, 두 단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에 도달했는지 의심한다. 교육부에서 내려온 문서를 읽다 보면 그 정의부터 헷갈린다.     

 

독서와 운동은 내게 제법 다른 몸/마음 자세와 물리적 환경을 요구한다. 책을 읽을 때 나는, 갓 내린 커피, 독서를 방해하지 않는 음악(나의 경우 재즈), 시선을 멀리 보낼 수 있는 풍경, 편한 의자 등이 필요하다. 운동할 때 나는, 운동복, 흥을 도구는 빠른 음악, 믿을 만한 트레이너 등이 필요하다. 책을 읽을 때 내 몸/마음은 차분하며 안정적이고, 운동할 때 내 몸/마음은 활발하고 역동적이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통섭/융합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좋아하는 것 두 가지를 합쳤다고 기쁨이 두 배가 되지 않는다.          


우리 학교에서는 몇 년 전 학부제를 시행했다. 타 대학 실패사례가 충분했기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시행됐다. 아직 10대 후반인 학생에게 대학 진학 이후 전공 탐색의 기회를 준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질적으로는 전공수업의 부실로 이어졌다. 전공 탐색은 선택한 전공 내에서도 가능하다. 실내디자인학과를 예로 든다면, 학생들은 실내 설계, 구조, 시공, 코디네이션 분야로 갈 수도 있고, 가구, 조명, 색채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 설계 분야 중에서도 주거공간, 식음공간, 의료공간, 전시공간, 무대공간 등으로 세분된다. 다양한 수업, 과제, 공모전,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에게 더 적합한 세부 전공/진로/꿈을 찾아간다.   

   

입시 미술을 통해 실내디자인이라는 동일한 학과를 선택했지만, 학생들을 모아 놓고 보면 정체성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요즘 친구들이 좋아한다는 MBTI를 봐도 그렇다. 특히 실내디자인은 예술의 영역이기도 하고 구조, 시공 등을 포함한 공학의 영역이기도 해서 더 그렇다. 20대 청년들이 경험하고 익혀야 할 통섭과 융합은 선택한 학과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여기서 익힌 통섭과 융합이라는 사유의 방법을 통해 추후 더 다양하고 복잡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통섭과 융합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자 정희진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통섭은 지향이라기보다 사유의 방법이다(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정희진, 44쪽)". 통섭은 "모든 지식을 다 공부해서 엮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능하지도 않고 불필요한 일이다. 융합은 100V가 200V로 전환되는 트랜스포머(transformer, 변압기)처럼 질적인 변화인 횡단(trans/versal) 작업이다.(위의 책, 46쪽)"     

           

대학에서는 왜 학과 간, 전공 간 벽을 허물려하는가? 사회학자 오찬호는 <진격의 대학교>에서 "간(間) 학문적 교류는 돈이 될 경우에만 가치가 있다(65쪽)"라고 진단했다. 100%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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