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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사과 김진우 Oct 22. 2023

웃으며 가르치고 배우기

PT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다. 내 몸의 변화를 알아보고 묻는 사람에게 집 앞 체육관에서 PT를 받는다고 말했더니, 그때마다 트레이너와의 경험이 쏟아진다. 트레이너가 잘 안 맞아서, 싫어서, 불편해서 PT를 지속하지 못했다는 경우가 꽤 있었고, 놀랍게도 그 이유 중 다수는 적절하지 않은 유머 때문이었다. 

     

트레이너와는 제법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힘든 근력 운동의 세트와 세트 사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던지는 간단한 안부부터 그날 먹은 음식, 체육관에 오기 전 일상의 강도, 몸의 변화, 기계 사용과 자세에 관한 질문 등등 할 말이 많다. 그러다 보면 어느 정도 사적인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그 단계에서 소위 유머 코드가 맞지 않으면, 어느 순간 불편하고 불쾌해진다는 것이다. 한쪽은 웃자고 한 얘기가 듣는 이에게 상처나 수치심을 준 것이다. PT라는 게 기본적으로 몸을 단련하는 과정이고, 어려움을 함께 넘어서는 훈련이니 건강한 유머는 두 사람의 유대관계를 튼튼하게 해 준다. 나의 경우 트레이너와 유머 코드가 잘 맞았고, 덕분에 운동과 운동 사이 웃음, 안도, 신뢰가 들어섰다.      


생각해 보니 같은 지점에서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웃음이라는 것이 매우 단순하고 자명해 보일지언정, 그 논리와 심리는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유머니즘, 김찬호, 81쪽)” 다양한 지위, 권한, 나이, 성별이 공존하는 대학에서는 최근 부적절한 유머 때문에 파면을 당하는 교수도 있다. 분위기를 띄운답시고 하는 유머라는 게 결국 비웃음, 희롱, 자기 과시인데, 이런 유머는 웃는 자와 웃음거리가 되는 자를 구분한다. 정작 유머를 내뱉은 사람은 그 유머가 누군가에게 상처와 좌절이 된다는 걸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그래서인가. 여성가족부에서는 대학교수와 교직원을 대상으로 폭력예방교육(교직원들은 전문 강사에게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 관련 특강을 연 1회, 1시간 이상 교육받는다)을 실시한다. 의무사항이라 억지로 교육을 들으러 가면, 내가 왜 이런 교육을 받아야 하냐며 툴툴거리는 사람, 남성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 같아 불편하다는 사람, 교육은 안 듣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교육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그런 방식의 교육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회의적이다. 교육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성적인 은유나 암시에 의존하지 않고도 통쾌한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익살의 세계(위의 책, 167쪽)”, “남녀가 서로의 인격을 침해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언어 공간(위의 책, 167쪽)” 일 텐데, 일 년에 한 번 듣는 교육으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사실 진정한 웃음은 신뢰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권위적인 사람일수록, 권위적인 사회일수록 유머는 불가능하다. 내가 어릴 때 어떤 대통령은 자신을 닮은 코미디언의 TV 출연을 금지했다. 히틀러는 동물에게 아돌프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적발했다. 공포를 기반으로 한 정치인에게 가장 큰 위협은 건강하고 희망차고 재기 발랄한 군중이다.     

 

내가 교실에서 갖고 싶은 것도 유머 감각이다. 점점 커지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탈권위적인 선생이 되고 싶다. 물론 쉽지 않다. 이런 말 하면 꼰대 같지 않을까, 썰렁해지지 않을까 싶어 자기 검열도 빈번하다. 유머집을 외워보고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콘텐츠를 뒤져 보기도 하지만, 유머는 스펙처럼 쌓이지 않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깨닫는 것은, 나 자신을 기꺼이 희화할 할 수 있는 여유와 용기가 유머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실수를 명쾌히 인정하고 신속히 사과하고 나(선생)도 언제든지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하고 유연한 태도가 있어야 학생들의 웃음을 선물 받을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머의 문법은 디자이너 혹은 예술가의 창조적 문법과 닮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 표정, 행동만이 유머를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는 사물에 유머를 접목하고 그런 디자인을 좋은 디자인이라 믿는다. 좋은 디자인 앞에서 사람들은 웃는다. 공감, 감동, 반전, 통쾌함, 놀라움에 대한 반응이다. 이탈리아 디자인은 특히 좋은 사례다. 그들의 디자인에는 표정과 감정이 있다. 일견 하찮아 보이는 일상 용품들이 유명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와 제조사의 장인 정신을 거쳐 삶의 질을 높여주는 유쾌한 물건으로 탄생한다. 성장하면서 잃어버렸을 동심의 순수함을 끌어올린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낙천성은 유머가 풍부한 일상 용품 덕분일까? 유머가 풍부한 일상 용품 때문에 낙천적 성향이 되었을까? 둘 다 맞을 것이다. 성인의 경우 평균 하루 10번에서 15번 웃는다는데 커피를 마실 때마다, 와인을 마실 때마다, 자동차를 탈 때마다 한 번씩 더 웃을 수 있는 그들은 그만큼 행복할 것이다.      


<유머니즘>의 저자 오찬호는 그의 책에서 말한다. “유머는 새로운 프레임을 짜는 마음의 훈련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 빠지기 쉬운 ‘인지의 왜곡,’ 즉 자신의 틀에 현상이나 경험을 끼워 맞추는 마음의 습관에서 잠시 거리를 두게 해 준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삶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연습으로 귀결된다. (위의 책, 238쪽)” 디자인 수업에서 늘 강조하던 얘기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위의 책, 238쪽)”이 필요한 모든 영역에 해당한다. 타인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조건이다.      


“유머는 삶의 무늬이자 인격이다. 자신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거기에는 인생 전체의 이력이 깃들어 있다. (위의 책,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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