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 수업 첫날 고관절 운동이 기억난다. 한쪽 다리는 접어 올리고 나머지 다리를 뒤로 뻗으며 허리를 구부리는데 뻣뻣한 몸은 숙여질 줄 몰았다. 옆 사람은 폴더폰처럼 몸을 접는데 나는 고개를 든 채 거울을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유연해졌다. 이제는 아프기보다 시원하다. 근력 운동도 조금은 편해졌다. 몸에 힘이 생긴 것 같다고 했더니, 트레이너는 힘보다는 유연성 때문이라고 했다. 몸이 유연해졌기 때문에 기계를 제대로 다룰 수 있고, 기계를 다루는 자세가 좋아져서 운동이 쉬워졌다는 것이다.
문득 궁금하다. 몸의 유연함과 마음의 유연함은 관계가 있을까? 몸이 유연해지면 마음도 유연해질까? 나이를 먹더라도 갖고 싶은 것이 유연한 사고다. 관용과 겸손이 더 해진 시선이다. 유연함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80이 넘어서도 어린아이들과의 대화가 자연스러운 윤호섭 교수님 같은 분을 볼 때마다 배우고 닮고 싶다. 운동으로 몸이 유연해지고, 몸을 유연하게 만듦으로써 마음도 유연해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운동을 해야 할 확실한 이유다.
<동의보감>이나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보면 연관성이 보인다.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말한다. “이제 정신을 뇌나 지능으로 한정시켜 편협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신은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 속에 존재한다. 우리 몸의 세포는 모든 생각,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생화학물질을 갖는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크리스티안 노스럽, 55~56쪽)”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몸과 마음의 연결성이 서술됐다. “가령 성내어 간이 상하면 근심으로 꺾고 두려움으로 풀어 준다. 기뻐하여 심이 상하면 두려움으로 꺾고 성냄으로 풀어 준다. 생각을 많이 하며 비가 상하면 성냄으로 꺾고 기쁨으로 풀어 준다. 근심하여 폐가 상하면 기쁨으로 꺾고 생각을 많이 하여 풀어 준다. 두려움으로 신이 상하면 생각으로 꺾고 근심으로 풀어 준다. 놀라서 담을 상하면 근심으로 꺾고 두려움으로 풀어 준다. 슬픔으로 심포가 상하면 두려움으로 꺾고 성냄으로 풀어 준다. (허준, 내경편, 대역 동의보감, 113쪽)”
그럴 줄 알았다. 몸을 유연하게 만듦으로써 마음도 유연하게 만들 수 있겠다. 반대로, 나이를 먹을수록 고지식하고 꽉 막힌 생각과 사고를 하게 되고, 젊은 세대와 소통이 어려워지고, 끼리끼리 모여 다니며 자신들만의 세상에 갇히는 이유도 유연성을 잃어가는 신체 때문이라면, 운동으로 속도를 늦출 수 있겠다. 동안이나 팽팽한 피부를 만드는 것보다 확실하게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코로나 번아웃이 왔을 때, 아침마다 마주한 내 얼굴이 내 것 같지 않았다. 미추의 문제가 아니었다. 낯설고 어색했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데, 당시 내 얼굴은 내 마음 상태를 정직하게 담고 있었다. 몇 달간 운동과 식이요법을 한 덕분에 건강하게 살아났다. 더 나이 들어 주름이 깊어지고 고집스러운 표정이 잦아지더라도, 성형과 시술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운동을 해야겠다. 내가 살아온 세월, 경험, 무게, 깊이를 견뎌낸 얼굴로 늙어갈 수 있도록. 그런 얼굴이라야 죽는 날까지 타인과의 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평생 운동을 해야 할 중요한 이유를 드디어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