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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Jan 23. 2016

파스타의 맛은 너에게 달려있다

미래에 살아서 느낄 수 없었던 오늘의 행복.

신기루.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세 글자다.

목이 타들어 갈 것 같은 열기 속에서 시원한 오아시스와 야자수가 있는 낭만적인 풍경이 으레 떠오를 것이다.

사전적으론 공기의 온도차 때문에 물체가 실제의 위치가 아닌 곳에서 보이는 굴절현상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집트에 살고 있지 않는 이상 과학적인 정의는 고이 접어두어도 좋다. 현실에선 아름답고 황홀한 순간이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환상' 내지는 '허상'을 표현할 때 관용적으로 쓰인다. 가령 우리 집 골목에서 원빈을 3초간 봤다면 그 골목은 "신기루가 있다면 이런 곳일까"라는 문장으로 묘사될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나만의 신기루 하나쯤은 가슴속에 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기루가 있다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길이 있다는 것을 믿을 것이며, 걷다가 지치더라도 계속해서 갈 수  있는 힘을 얻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손에 닿기 어려운 목표로서 작은 성취에  안주하기보다 몇 배는 더 큰 노력을 쏟게 만들 것이다. 지인들은 신기루에 깊이 사로잡힌 나를 '이상주의자'로 취급했다.

어릴 때 불렀던 <파란 나라> 속 "꿈과 사랑이 가득한, 천사들이 사는 나라"는 그만 쫓고 현실에 살라는 충고를 하기도 했었다. 


오랜만에 대학 선배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지하철역 주변의 맛집을 검색한 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날 약속을 정했다. 사전 정보 없이 찾아간 곳이 아니라서 맛에 대한 실망은 염려하지 않았다. 둘 다 똑같은 메뉴를 주문하고 파스타를 포크에 말아 한 입 들이켰다.





"난 맛있는 거 같은데 넌 어때?" 선배는 물었고, 나는 알면서 왜 묻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맛있다고 하기에는 5% 부족해, 이것보다 더 맛있는 파스타가 있을 거야" 


그리고 선배는 말했다. 그런 건 없다고.

그럼 넌 평생 맛있는 파스타를 먹을 수 없을 거라고.  


무슨 그런 악담을 하느냐며  받아쳤지만 선배와 헤어지고 한 참이 지나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말이 던진 무게는

여전히 남아있다. 나를 잘 파악하고 있는 '내 사람'인 그가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파스타'를 말한 게 아니란 걸 나는 안다. 선배는 '삶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나무란 것이다.

나를 잘 아는 만큼 강하고 단호한 어조로.   



나는 행복을 꿈꿨기에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다. 행복은 신기루였으니까.

행복은 저 하늘 높이 떠 있어서 땅에 서 있는 나는 만질 수가 없었다. 노력해서 높은 건물에 올라가도, 어렵게 비행기를 타서도 손에 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행복을 이상적인 위치에 놓고 살았다. 내가 꿈꾸는 10이라는 공고한 세계가 있어서 자주 만나는 것들은 모두 4~5 밖에 되지 않았고, 운이 좋아야 7을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살다 보니 멋진 곳을 다녀와도 멋지다는 말을 아꼈다. 더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지금의 멋짐에 만족할 수 없던 것이다. '진짜 맛있다, 조금 맛있다'는 부사의 차이만 있을 뿐 맛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뜻을 같이 하지만, 나는 '진짜'라는 부사 이외의 것들에는 모두 '맛없다'고 치부해 버렸다. 

그래서 늘 지금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행복할 수도, 해서도 안됐다. 

더 큰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에.



내가 보고 듣고 사는 세상을 스스로 단정 짓고, 그 단정 지어진 세상에서 나는 멋없는 것을 보고 맛없는 것을 먹었다. 내가 자른 세상의 크기만큼 행복의 양도 잘라져 나간 것을 미처 알지 못한 것이다.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다 과정이고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 천명관 , 고령화 가족


내 날의 저 끝에 진짜 행복이 있다고 믿어선 안된다. 그렇게 살다 간 내 삶의 과정은 행복이란 끝으로 가기 위한 수단이 돼버리고 만다. 또 미래에 행복하자고 지금을 참아서도 안된다. 지금 참고 있다면 '참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먹는 파스타가 맛있지 않다면 나는 '맛없는 파스타를 먹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만 지금을 살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미래의 행복도 없다는 걸 느끼는 요즘, 나는 다짐한다.

미래에 행복을 걸진 말자. 지금 조금 더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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