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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Jan 01. 2016

주고 싶은 리스트가 있나요

순수하게 주는 마음이 타인을 향하기 까지.



사람들은 일찍이 리스트(list)의 홍수 속에 잠식된 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초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방학을 앞두고 컴퍼스의 두 다리로 원을 그려 생활계획표를 만들던 자신을 기억해 볼 수 있다. 물건을 구입하는 비용이 점점 내 지갑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할 때쯤이면 사고 싶은 것들이나 사야 할 쇼핑 목록을 적어 위시리스트(wish list)로 명명하고 잠재적 소비욕구를 봉한다. 그리고 요즘 없으면 트렌드에 뒤처지는 이것은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노인 둘이 각자의 소망을 실현해 나가는 동명의 영화가 2007년 개봉한 뒤 널리 퍼지게 됐다. 바로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적는 버킷리스트(bucket list) 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건 이 리스트가 비추고 있는 방향이다. 앞서 말한 리스트들은 모두 나를 향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하면 모두 나만 향하고 있지 않은가.


한 번도 회의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는 이 리스트들에서 '나는 참 이기적인  동물이다'라고 느꼈던 것이 불과 엊그제 일이다.


며칠 전 가수 이적 씨가 딸에게 선물한 그림책을 자신의 sns 에 올렸고, 지나가던 누리꾼인 나는 그 사진을 줍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지 출처 : 이적 페이스북



별에 대한 그림책을 만들어 달란 딸에게 '별과 혜성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한 편의 동화를 만들어 준 것이다. 누가 봐도 잘 그린 그림실력이거나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져 있었더라면 나는 그냥 한 번 보고 지나쳤을지 모른다. 하얀 A4용지에 흑색 연필로만 적은 이야기를 스템플러로 엮어낸 모습. 그 소박한 책의 형태가 어린 딸에 대한 그의 마음을 더 애틋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우주에서 홀로  외로워하던 별이 72년을 주기로 찾아오는 혜성이란 친구를 만나 행복한 기다림을 가지고 빛날 수 있었다는 사랑스러운 내용은 나의 감동 수치를 더 끌어올렸다.


나도 자식이 생기면 동화책을 그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뜨겁게 솟구쳤으나, 결혼할 생각이 없는 나란 사람은 분명 이 순간 느꼈던 생각을 잊어먹고 살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다이어리를 집어 들었다. 


나중에 조카가 생기거나 친구 아이들의 이모가 되면 그림책을 그려서 선물하자.

혹여 그럴 수 없다면 옆집에 사는 가까운 아이에게 라도 줄 것. 



적고 보니 다이어리에 적힌 그간의 내용들과는 사뭇 달랐다.


'사고 싶은 브랜드의 가방과 먹어봐야 할 디저트 가게의 이름, 여수 여행 다녀오기'


사고 싶고 먹고 싶고 가고 싶은 리스트가 즐비한 가운데 '타인'은 없었다. 

나에게 주고 싶은 것들은 이렇게나 많은데 남에게 주고 싶은 것은 하나도 없다니. 슬프게 신기할 노릇이었다.

"나는 끔찍이도 나만 알고  사는구나" 한탄 섞인 혼잣말을 하다가 문득 '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나 아닌 타인에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어른이 되어  갈수록 '주는 마음'이 영악하게 변해가는 것 같다.

내 손에 쥔 젤리 한 봉지가  전부였을 나이에는 옆에 있는 아이에게 쉽게 젤리 하나를 건넸다. 그 아이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에서 그렇게  행동했다기보다는 '내가 둘을 가졌으니 하나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단순한 행동으로 해석하는 게 맞을 것이다. "왜 젤리를 나눠 주었느냐"묻는다면 아이들은 대부분 "그냥"이라고 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줄 수 있는 게 많아졌음에도 어린아이보다 더 주지 못한다. '주기 위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받기 위해서 주고 있는  것'인 경우가 많을 테니까 말이다. 

작은 선의에도 계산기를 얹어 주는 것 같아서 무언가를 받을 때에도 온전히  고마워하기보다 의심을 먼저 품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이 사람에게 빚을 졌구나. 나중에 어떤 부탁을 해올까"하는.


암묵적으로 얹어지는 계산기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훈계 한 마디 씩을 듣기도 한다. 주고받는 이해관계를 돈독히 해놔야 사회생활하기에 편하다고.


주고받는 세상 속에서 어쩌면 타인에게 내가 줄 수 있고, 그가 받을 수 있는 건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물,

진심이란 마음을 담은 사소한 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다이어리 한편에 바라는 것 없이 줄 수 있는 것들을 적어 '주고 싶은 리스트'란 제목을 붙였다. 민지-편지, 수영-편지, 재희-편지...



영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선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생의 가치는 말이야.

다른 사람에게 뭘 받았는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뭘 주었느냐로 정해지는 거야.



나는 나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에게만 아낌없는 정성을 쏟으면 훌륭한 나무로 자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라는 나무가 땅에 서있을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이란 뿌리들이 얽히고설켜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데에 있다. 실제 나는 그 뿌리의 곁가지 밖에는 되지 않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난 세상이란 다양한 사람들이 나란 나무의 몸통이 되고 가지가 되어 나를 채워주고 있었다. 


우리는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생명체이다.  내가 받은 것들은 이미 나를 형성하는 기본 뼈대가 되어 보이지 않지만 내가 준 것들은 살점이 되어 겉으로 보이는 나의 형태를 만들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뜻하는 바는 알고 있지만 피부로 이해하긴 어려웠던 그 대사를 이제는 나도 말하고 있다. 


"다른 누군가에게 바라는 것 없이 순수하게 주고 싶다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쌓여서 나를 만들고 종국에는 그것들이 내 인생을 평가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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