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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Dec 28. 2015

불안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온전히 나만을 향한 글 쓰는 시간.

나는 지금 갯벌에 서있다. '나'를 캐기 위해서.

지금에서 글을 쓰는 내 모습이 난 그렇게 느껴진다.


물에 빠졌다면 나는 헤엄을 쳤을 것이고, 개에게 쫓기고 있다면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뛰었을 것이다.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밖에 없다"던 어느 아이돌 가수의 노랫말을 빌어 나는 가진 거라곤 이 '펜'밖에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글 쓰는 것' 밖엔 없다. 


지금 적지 않으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 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모두가 페이지를 잘 넘기고 있는데 나만 똑같은 숫자가 적힌 페이지를 오랫동안 펼쳐 두고 있는 기분. 그 기분이 상당 시간 길어지자 나의 초조함은 심해져 갔다.


'얼마나 걸려도 돈이 안돼도 내가 원하는 일을 쫓아갈 것이냐, 내가 원하진 않더라도 조금 더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택할 것이냐'


내 몸 하나 먹여 살리기 힘들어서 어른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것도 미안할 지경인데, 꿈은 있어서 자존심은 있어서 현실과 타협하긴 싫어하는 내 모습. 꿈과 돈의 상관관계, 그리고 나.


김애란 작가의 < 달려라, 아비 > 에서 이런 나를 옮겨다 적은 듯 가슴이 먹먹해지는 구절을 만났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 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시간은 하루가 다르게 내손을 빠져나가는데 나란 사람은 정말 숨만 쉬고 있는 거 같아서, 그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일까 봐 겁이 났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길은 맞는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맞는지, 가다 보면 끝이 있기나 한 건지

질척 질척한 갯벌에서 걷는 것처럼 한 발짝을 내딛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나는 갯벌의 조개를 캐내듯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캐내어 적기 시작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 그로부터 파생된 생각이나 감정, 하지 못했던 말까지... 기억들을 떠올리고 글로 다듬으면서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게 됐다. 온전히 나만을 향한 시간이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생각은 시작되고, 자면서 조차 꿈을 꿀만큼 우리 머릿속은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생각 활동에 바쁘다. 셀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그 방향이 자신의 마음이었던 적은 드물었던 거 같다. 래서 나를 몰아세우거나 채근하지 않으며,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 똑같이 존중하고 평가하지 않는 '묵묵한 시선'이 낯설지만 반가웠다.  

나를 위해서 나를 생각하는 시간.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나를 생각할까. 


묻혀만 있어서 보이지 않았고, 꺼내어 호명하지 않았기에 그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도 가늠되지 못했던 내속의 것들. 남들에게 슬픈 얘기는 잘 꺼내지 않는 성격 탓에 나라는 갯벌 속에는 유난히도 '아픈'조개가 많이 매복돼 있었다. 그래서  둥글넓적한 일반  조개들처럼 갈퀴나 호미 같은 날카로운 금속으로 캐낼 수는 없었다. 도중에 껍질이 긁히거나 열려서 속살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갯벌에 구멍을 낸 뒤 맛소금을 뿌리면 쏘옥 고개를 들이미는 맛조개의 채집 방식이 내 생각들을 건져 올리는데 더 적합했다. 솔솔솔 소금을 뿌려 맛조개를 불러 내듯 상처받은 마음들을 한 자 한 자 적어가며 다독이고 내 품에 안았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맞부딪칠 때, 나는 책을 읽는다.

철저히 외로워지도록.
  / 정이현, 작별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철저히 '혼자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나를 응시하는 거울이 된다. 일말의 보정도 없는 적나라한 자신의 모습에 괴롭기도 할 것이고, 당최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만난 것처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 것인지 막막함이 밀려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도 진정으로 마주할 용기만 있다면, 다른 어떤 준비와 자격은 필요치 않기에 아프고 다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상비약이 된다. 그리고 그 용기란 것도 참 별게 없었다. 일단 '불안하니까 써보자'는 막연함이 정면으로 나를 상대할 기회를 준 것이다.


아픈 시기일수록 더 혼자가 되는 쪽을 택하고 싶다. 외롭기도 하겠지만, 누군가의 품에 안기고도 싶겠지만 나는 '혼자서 끝까지 가봤다' 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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