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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Jan 06. 2016

축구장과 피아노

'그녀의 리듬'을 쫓으며...

축구장은 생각보다 더 고요했다. 당연한 건가. K리그도 K리그 챌린지도 아니니까.

Women's K-league. 줄여서 'WK리그'가 열리는 이 곳에 내가 올 수 있었던 이유도 몇 다리 걸친 혈연관계에서 비롯됐으니 말이다.


엄마의 동생, 이모의 딸은 축구선수다. 초등학교 육상선수로 시작해 중학교 때 본격적으로 축구의 길에 접어들었고, 30대 초반인 지금까지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으니 뼛속까지 체육인이다.   

"언니 서울에서 시합 있다는데, 할 일 없으면 좀 갔다 와." 엄마의 수많은 권유들은 늘 나의 냉대를 당연시 여겨 왔는데, 그날은 어찌 된 영문인지 선뜻 내 부름을 받을 수 있었다. 엄마의 전화에 가볼까란 마음이 기다린 듯 고개를 내민 것은 어쩌면 갈 곳을 잃은 내 빠르기말들의 외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십여 년 전에도 중학생이었던 그녀를 응원하러 축구장을 찾은 적이 있다. 

자신의 등번호와 이름을 새긴 언니는 뛰고 있었고, 마냥 신이 나서 구경하던 나는 생각했었다.

나도 언젠가 내 이름이 적힌 옷을 입고 뛰는 날이 올까. 그날이 오면 참 신날 거 같다고.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여전히 언니는 뛰고 있고, 나는 관중석에서 생각한다.

내 이름이 적힌 옷도 있기는 한 걸까. 자신의 이름이 적힌 옷을 입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거 같다고. 


저 멀리 측면에서 뛰고 있는 낯익은 등번호를 쫓아가는 내 시선과 달리 머릿속엔 개구진 얼굴의 소녀가 떠오른다. 나는 어려서부터 언니를 잘 따랐다. 5:5 가르마의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훈훈한 외모에 바지만 입고 다녔던 언니는 남자로 오해받는 일이 부지기수였으나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오히려 남자보다 뛰어난 운동신경과 거침없는 성격으로 이모에겐 든든한 아들이자 나에겐 멋진 오빠가 돼주었다. 특유의 장난기로 친척 어른들을 가볍게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넉살은 조용하고 숫기 없던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나와 다른 점이 많아서 그녀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그보다 그녀만의 어떤 분위기가 있어서 그것이 나를 압도했다. 활기찬 기운이 단단하게 묶여 있는 가운데 그 안정감이 자연스럽게 슬픔을 자아낸달까. 내가 8살, 그녀가 12살. 고작 10대 초반이면서 '사는 게 녹록지 않아'라는 태도가 눈빛에서 몸에서 베어 나오는 듯했다. "내가 멈추라고 하기 전까지 계속 페달 밝아" 이 말을 끝으로 자전거 운전은 나에게 맡긴 채 그녀는 저 뒤에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왜 이 밤중에 달리기를 하는 것인지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사이드 미드필더인 언니는 왼쪽 측면에서 상대 수비수와의 적극적인 몸싸움으로 자주 패스 기회를 만들었다. 후반 어느 시점에는 상대 골문 근처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가 슛을 날렸으나 아쉽게 골키퍼에게 막히기도 했다.


치열한 경기를 보며 왜 나는 문득 그녀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을까.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아름답게 연주해왔었다는 생각이.


똑-딱 똑-딱

경쾌한 메트로놈(metronome)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몸속에 메트로놈을 넣고서 90분 경기를 연주하기 위해 축구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메트로놈은 박자를 맞추는 기계이다. 시계의 초침이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이며 소리를 내듯 메트로놈 또한 설정한 빠르기만큼 중앙의 쇠막대가 좌우로 운동하며 일정 간격으로 소리를 낸다. 알레그로(Allegro-빠르게)인 곡을 연주하는데 어느 순간 안단테(Andante-느리게)가 되어버리지 않도록 저 똑-딱음을 들으며 같은 템포를 유지하는 것이다. 발라드를 댄스곡처럼 부르면 그 노래를 망치게 되는 것처럼 피아노를  치는 데 있어서도 그 곡에 어울리는 빠르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해 주지 않으면 완벽한 한 곡을 들을 수 없게 된다.


축구장에선 90분의 연주시간이 주어진다. 그렇기에 피아노보다 더 연주자의 빠르기 조절 능력이 중요해진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뛰다간 후반전에 뛸 기력이 남지 않는다. 그렇다고 느슨한 플레이로 전반전을 임했다간 상대팀에게 주도권을 뺏겨 영영 끌려다닐 수도 있다. '체력'이란 빠르기는 축구선수에게 '게임의 승패'이자 자신의 '생존'이다. 축구의 오선지엔 그려진 게 없다. 날씨, 잔디 상태, 그날의 컨디션, 경쟁상대 등등 돌발변수들이 무궁무진해서 오로지 변하지 않는 건 자기 자신뿐이다. 


자신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언니는
언제부터 보이지 않는 메트로놈을 품고 다녔을까.


조금 더 달려도 숨이 차지 않기 위해서, 골키퍼가 막을 수 없는 슈팅을 하기 위해서, 정확한 방향으로 볼을 패스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다시'를 외쳐가며 독하게 훈련했을까.


여자축구선수는 분명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스포츠란 분야에 남녀차별은 없지만 종목의 특성상 선호도는 존재한다. 남자축구보다 뛸 수 있는 무대도, 인기도, 페이도 적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도 선수 활동을 지속하는 건 대부분 남자일 것이고, 그렇기에 선수생활의 수명도 더 짧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축구선수가 됐고, 팀에서 현재 실력도 나이도 든든한 맏언니를 담당하고 있다. 오랜 시간 꾸준하게 한 길만을 달려올 수 있었던 건 혼자만의 훈련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그녀만의 리듬'덕분이라 생각한다. 


리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연주는 피아노도 축구도 아니다. 바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일 것이다.

나는 지금 아다지오(Adagio-매우 느리게)쯤 되는 빠르기를 연주하고 있는 걸까. 그러니 초조해말고 이 빠르기에 내 몸을 맡겨야겠다. 이 순간도 쌓여서 '나의 리듬'이 돼줄 테니까. 

역시 엄마 말대로 축구장에 오길 잘 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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