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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Feb 07. 2016

하늘을 보는 이유

일상의 3월 토끼를 찾기 위해 

"하늘 좀 보냐." "무슨 말이야."

"요즘은 안 부딪치고?" "무슨 말이냐고!!"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대학 동기는 다짜고짜 영문모를 말을 해대니 나는 콱 짜증을 낼 수밖에. 


"왜 모르는 척이야, 너 학교 다닐 때 땅만 보고 걸어 다녔잖아. 책에 얼굴 파묻고 다니거나."

아!... 속으로 흘러나온 작은 탄식은 숨겼다. "내가 그랬었던가. 기억도 안 난다. 그게 언제 적 일이니." 


꽤나 먼 과거 인척, 생각나지 않는 척했지만 기억 안 날 리 없다. 내가 그랬었다. 내 눈은 항상 무언가에 흠뻑 빠져있지 않으면 안 됐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휴대폰을 보면서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뎠고, 계단 2개를 한 번에 건너뛰는 아찔한 수직낙하를 경험했다.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친절히 알려주마. 동기는 부끄러운 나의 행적들을 들춰냈다.

"시험기간이면 너 책에 고개 박고 다녔잖아. 그래서 도서관 계단 중앙에 있는 독수리 동상에 머리 박았잖아. 기억 안 나? 진짜 기억 안 나? " 웃음기 깔린 목소리는 할 얘기가 또 있나 보다.

"나 군대 휴가 나왔을 때도 나 때문에 인문대 행사하는 거 알았잖아. 플랜카드가 건물마다 붙어 있었는데 어떻게 한 번을 못 봤다는 게 말이 되냐?" 


대학생 때 나는 걷는 시간을 아까워했다. 그래서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경보하듯 캠퍼스 안을 돌아다녔다. 정해진 목적지로 가기 위해 걷는 것이지, 걷기 위해 걸어본 적은 드물었다. 다음 수업은 어떤 거였지 한 걸음, 과제 마감이 언제더라 또 한 걸음. 이동시간은 내게 해야 할 일을 되내이기 위해 존재할 뿐이었다. 지나가는 학생들과 길에 심어진 나무들은 언제나 내 눈에 들어오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나는 오로지 나밖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를 너무 사랑한다거나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잔뜩 긴장을 집어먹고 있었다.


20년간 살아온 곳을 벗어나 외딴 도시에서 4년을 보내야 한다니, 내 선택만으로 강의시간표를 짜고, 아무도 내가 결석한대도 신경 쓰지 않으며,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오후조차 일어나라 내 이불을 걷는 이가 없다. 처음 맛보는 어른의 자유가 왜 나에겐 달콤하기보다 짐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어린 동생을 업은 소녀가장의 막중한 책임감을 왜 내가 고스란히 전해받았는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동생을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내 근육과 시야는 스스로 빙하기에 들어섰다.   





이런 나를 두고 한 친구는 베짱이같이 말했다. 하늘이 저렇게 푸른데 수업 한번 제껴줘야 하지 않냐고. 

위를 올려다보는 친구의 고개를 아래로 젖히며 나는 응수했다. 니가 듣는 2시간 수업료가 얼마인 줄 아냐고.

'하늘의 무상함속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대자연 앞에 우리는 무릇 아무것도 아닌 개체다.' 하늘을 보며 찬탄을 마지않는 이들의 식상한 주장은 조금도 나를 동요시키지 못했다. 대신 나는 닮고 싶지 않았던 윗 세대의 말을 따라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떡과 밥이 떨어지니. 


독수리 부리에 머리를 쪼이고 난 뒤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를 좀 봐달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전공수업이 숱하게 진행되는 인문대 건물, 그 앞을 수십 번 지나쳐도 보지 못한 행사 공지. 인문대생이었던 나는 잠깐 학교에 놀러 온 군인 친구가 말해서 보였고, 그가 말해서 알았다. 같은 장소에 있어도 누군가는 보고, 누군가는 보지 못하는구나. 이 지경이 되자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은 얼마나 더 있을까. 


교양수업을 듣기 위해 자연대로 향하던 어느 날이었다. 

험준한 지형에 위치한 우리 학교는 그 덕분에 건물 하나에도 여러 개의 통로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자연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아스팔트가 깔린 넓은 우회로와 건물 뒤 가파른 땅에 조성한 작은 숲을 가로지르는 나무계단 길.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상념에서였을까. 자연대로 가는 두 갈래 길에서 나는 늘 다니던 평평한 길을 두고, 울퉁불퉁한 통나무 계단이 있는 가지 않던 길을 찾았다.


계단의 중반쯤이었을까. 저 아래 녹색 풀더미 속에서 뭔지 모를 하얀 게 아른거렸다. 저게 뭐지. 계단의 양쪽엔 무성한 풀과 들꽃뿐인데. 희끗희끗 보이는 하얀 것의 곁으로 다가갔다. 에구머니, 토끼가 아닌가! 토끼가 왜 학교에 있단 말인가. 눈앞에서 움직이는 뜬금없는 작은 동물이 나는 너무 웃겼다. 길을 걷다가 토끼를 만날 확률. 만화가 아닌 이상 현실에선 아주 희박하니까 나는 그저 웃을 수 밖에는 없던 것이다. 





"학교에서 토끼 본 적 있니?" 다음 날 만나는 이들마다 붙잡고 물었지만 모두 금시초문이었다. 오히려 '뚱딴지같은 토끼 타령'을 한다며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흘겼다. 아싸! 드디어 나만 본 것이 생겼다. 그들은 보지 못했다는 통쾌함과 나만 봤다는 유일함. 높은 경사 때문에 엎어질까 책에서 손을 떼니 토끼를 발견한 것이다.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처럼 '발견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알고 보니 자연대의 어느 과가 이벤트로 토끼 열 마리를 학교에 방생했단다. 내가 본 토끼는 그중 한 마리였다.

깜찍한 토끼 친구를 보러 한동안 나는 자연대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세네 마리를 한꺼번에 보는 운 좋은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그들에게 줄 당근을 가방 속에 넣어 다니며, 토끼 일가가 학교에서 잘 살아갈지 내 학점만큼이나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었다. 시름없이 학교를 휘젓는 활발한 움직임이 풀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 가겠다는 패기가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잘 따르는 순수함이 나는 부러웠으니까. 


토끼를 만났던 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하고 또 개강을 하고. 숲으로 향했던 내 시선은 다시 나에게로 거둬졌다.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취업의 배에 승선하기 위해서 또다시 나는 내 영혼의 그림자까지 탈탈 털어가며 나에 대한 골몰에 열중했다. 어렵사리 경제인구에 참여하게 돼도 몸과 머리는 23인치 모니터에 최적화되기 위해 노력하느라 바빴다.


친구와의 전화를 끈고, 출근길 아침 라디오에서 들었던 날씨 이야기가 떠올랐다.

구름 많음과 구름 조금으로 구분되는 날씨는 사실 잘못된 것이라고. 구름은 수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어서 하루도 똑같은 하늘은 없다고. 


어쩌면 나는 아주 가끔 하늘을 쳐다보니까 그 미묘한 표정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건 아닐까. 구름은 우리가 눈치챌 수 없게 움직여야 하는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지 모른다. 매일 하늘을 보는 사람들만이 찾아낼 수 있는 기쁨을 남겨두어야 하니까. 구름은 그렇게 1cm만 움직여서 지루한 하늘로 위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야심한 밤, 우연찮은 하늘 타령들에 깜깜한 하늘이라도 보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공원을 걸으며 잔디를 밟자, 문득 자연대의 토순이들이 생각났다.

그 토끼들은 어떻게 됐을까.

토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왜 지금은 한 마리도 내 눈에 띄지 않는 걸까.

어쩌면

하늘을 보지 않아서 토끼도 보이지 않는 건 아닐까.


늘 나만 보느라, 눈과 귀를 휴대폰에 연결하느라, 오늘도 어제와 똑같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하루하루를 사는 게 바빠서. 내 눈은 하늘을 올려다 보기는커녕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볼 틈도 허락치 않았다. 

그러면서 따분하고 재미없다며 툴툴댔다.



지루한 일상이 바뀌지 않는 건 앨리스의 용기가 없어서이지 않을까.

회종시계를 가지고 뛰어가는 3월의 토끼를 그냥 지나쳤다면, 몸이 커지고 작아지며 기묘한 동물들과 이상한 나라에 가보는 경험을 앨리스는 영원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앞사람의 신발 옆에, 저 멀리 전봇대 뒤에,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 밑에 깔린 3월의 토끼를 외면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그들은 내가 찾아주기를 숨어서 기다리는 걸지도.




앨리스는 말했다.

"동화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 일은 실제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잖아." 알록달록 동화책에서 살지 흑백의 현실에서 살지는 내 마음이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내 눈은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찾아낼 것이다. 너무 작고 시시하면 되레 우스꽝스러워 신기할지도.


앨리스는 또 말했다.

"이렇게 사는 게 더 재미있잖아. 나한테 벌어질 일들이 너무 궁금하단 말이야" 

하늘도 보고 개미도 보며 사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나만 보고 살기에는 나는 너무 오래 살 거 같으니까.

나만 보는 인생은 금방 궁금하지 않을 테니까.


앨리스는 또 또 말했다.

"어제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지금의 난 어제의 내가 아니거든요."


나는 말했다. "하늘을 보지 않던 어제의 난 괜찮아요. 왜냐하면 오늘의 난 하늘을 보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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