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빵은 100-37

#책과강연#백백글쓰기#14기#호빵은

by 향기로운 민정

퇴근 시간에 맞춰 눈이 내린다. 손님처럼 하얀 꽃송이 같은 눈이다. 퇴근길 미끄러움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반가움이다. 눈이 오는 밤이면 호빵을 사러 가야 할 것 같다. 사람은 39세까지의 경험을 되새김질하면서 살아간다는 어른들 말씀이 맞는 것 같다. 추억이 있는 노래를 듣고, 추억이 있는 음식이 더 끌린다.

이맘때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면서 사 오셨던 호빵. 식을까 봐 가슴에 품고 종종 걸으므로 눈 속을 달려오셨을 아버지. 방에 들어서자마자 잠바 속에서 "짠~" 하고 내어 주신 호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5개들이 호빵 한 줄을 사 오셨다. 아직 식지 않은 호빵을, 먹기 좋게 식어 준 호빵을, 받자마자 허겁지겁 먹었다. 너무도 맛있게 먹는 우리들 모습에 엄마와 아버지는 차마 드시지 못하고 우리들에게 양보를 하셨던 호빵을. 그때는 몰랐다. 부모님이 호빵을 좋아하지 않아서 안 드시고 우리에게 양보하신 것이 아니었음을. 양보가 아니라 참았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제 몫을 다 먹고도 부모님 몫을 서로 먹겠다고 몸 싸움했다. 빨리 먹고 더 먹기 위해서 뜨거운 팥 앙금을 입안에 넣고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없어 펄쩍펄쩍 뛰었던 우리. 그 밤도 눈 내리던 겨울밤이었다. 아버지의 체온에 데워졌는지, 식지 않았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따끈따끈한 호빵을 '호호'불면서 먹었다. 팥 앙금의 달콤한 유혹에 허겁지겁 입에 밀어 넣게 했던 호빵을. 유난히 길고 길었던 겨울밤 TV를 보고 있으면 드라마나, 만화보다도 더 우리를 현혹시키는 광고가 나온다.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고 빨간 모자와 목도리를 하고 호빵을 먹는 광고다. 우리들 침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호빵을 먹지 않은 겨울밤은 너무 길고 지루한 밤이었다. 긴 겨울밤에 호빵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요즘은 편의점에서 호빵을 파는데 찐 호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가끔 편의점에서 찌고 있는 호빵을 만나면 오래전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찐 호빵이 없으면 봉지째로 사 와서 집에서 찜기에 쪄 먹는다. 아직도 변함없이 맛은 있는데 허전하고 아쉬운 이 느낌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버지 품속에서 숙성된 맛이 첨가되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 보드랍고 달콤한 맛보며, 창문 너머 하얀 눈송이 감상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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