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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100-53

#책과강연#백백글쓰기#14기#흔적#가을

by 향기로운 민정

책장에 있는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크기도 두께도 다르다. 제목처럼 제각각의 모양들이다. 제목을 보면서 읽었는지, 꽂아만 두었는지 가물가물, 아리송한 책도 있다. 처음 본 듯 처음 아닌 책에 관심이 간다. 의문이 드는 책에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 내용을 보면 기억이 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어떤 책은 중간에 쉼표처럼 말린 낙엽이 끼워져 있다. 또, 어떤 책은 끝부분에 마침표처럼 숨죽여 숨어 있다.


그랬다. 새로운 책을 사 오면 목차 부분에 말린 낙엽을 끼워 두었다가 읽은 부분을 표시하는 책갈피로 사용했다.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이 너무 예뻐서 너무 아쉬워서 주워서 말리는 습관이 있다. 철 지난 잡지책에 화장지를 깔고 낙엽을 말려서 보관했다. 가을을 보내는 내 마음이다. 어쩌면 미련일 수도 있지만 그 시간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라고 홀로 우겨본다. 낙엽이 지는 가을 거리에는 무심코 지나치기엔 너무 예쁜 낙엽이 지나치게 많다. 바쁜 걸음도 멈추게 할 만큼. 그렇게 하나, 둘씩 모은 낙엽이 차곡차곡 쌓였다. 고운 빛깔 예쁜 모양으로 잘 마른 단풍들을 코팅해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가을을 선물하려는 내 마음을 굳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대부분은 내가 읽는 책의 갈피로 사용한다. 읽다가 멈추었을 때 책을 접지 않고 말린 단풍잎을 꽂아두면 딱 좋다. 책장에 책을 꺼내 살펴보면, 어느 책을 얼마큼 읽었는지, 글 숲에 숨어 있는 나뭇잎이 말해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책꽂이에 다 읽은 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문구가 끝나는 페이지까지 낙엽을 옮기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하겠다. 어느 순간부터 소유하는 책 보다 도서관을 이용할 때가 더 많아졌다.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책에는 가끔씩 코팅한 단풍잎을 넣어둔 채 반납할 때도 있다. 나와 같은 취향의 책을 읽는 누군가가 낙엽 갈피를 발견하고 가을을 선물 받은 것처럼 좋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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