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 안의 침묵을 건너

해석된 감정과 ‘작가’라는 틀 사이에서 나는 멈췄다

by 김민준

언젠가부터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졌다. 그동안 써온 글들로 내 안의 감정을 분석하고 구조화하고 쏟아낸 이후였다. 그 과정을 지나고 나니, 감정이 정리되고 함께 글도 멈춰 있었다.


그전까지 내 감정은 늘 어지러웠다. 하루하루가 벼랑 끝 같았고, 잠에서 깬 순간부터 다시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온몸을 짓눌렀다. 매일이 생존의 문제로 가득했다. 생활비 걱정과 불확실한 미래가 겹치며, 지금 이 자리조차 버티기 힘들었다. 그 위에 덧붙여진 건, 내 안에 남아 있는 수많은 물음표들이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감각. 그 혼란 속에서 과거의 시행착오들이 자꾸 떠올랐고, 완성되지 못한 시도들과 미련이 남은 결정들이 하나씩 고개를 들었다. 나를 괴롭히는 건 현재만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행적 전체였다.


과거와 현재가 그렇게 나를 괴롭히며 내 안은 불안과 초조, 두려움과 혼란이 겹겹이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라 헤맸고,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도 말로 다 담기지 않아 답답했다. 아무에게도 다 꺼내놓을 수 없어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버텨야 했다.


그렇게 방향을 잃고 흘러 다니던 감정들이 나를 지치게 했고,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든 붙잡아보고자 글을 썼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 쓰는 것도 쉽지 않았고 수없이 지우고 다시 쓰는 것을 반복하며 문장들을 다듬어나갔다. 그렇게 내 안의 혼돈을 글로 내뱉었을 때의 안정감이란. 그 안정감에 스스로 위로받으며 나는 나를 써왔다. 그렇게 "'나'를 씁니다"라는 브런치북을 지금까지 연재해 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내 안의 혼돈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하니 더 이상 쓸 게 없다고 느껴졌다. 이제는 내가 나를 너무 잘 아는 것 같았다. 지금 이 감정은 불안이고, 이건 초조함이고, 이건 두려움이라는 걸 정확히 짚어낼 수 있었다. 감정을 해석하는 순간, 그것들은 더 이상 나를 움직이게 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그 정체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럽고 절박했기에 글로 토해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이름을 알게 되자 오히려 감정이 고요해졌다. 해석은 나를 이해하게 했지만 동시에 말문을 막았다. 말하자면, '쓸 이유'가 사라진 듯했다.


글이 멈춘 건 단지 고요해서가 아니었다. 감정이 해석되고 분류되면서, 글로 말해야 할 긴박감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쓰게끔 하는 에너지는 내 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던 감정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고 해석되면서, 감정의 결들이 선명해지는 대신 그 힘은 줄어들었다. 말하고 싶던 절박함이 사라지자, 문장을 밀어내던 원동력도 함께 잦아들었다.


게다가 최근에 브런치 작가가 된 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예전엔 그냥 '나'를 썼다. 감정이 올라오면 그 감정 그대로 문장에 실었고, 그것이 곧 글이 되었다. 누가 읽는지, 어떤 반응이 올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브런치에 작가로 등록된 후부터 달라졌다. 내 글에 달리는 라이킷 수, 댓글(아직은 달리지 않았지만) 같은 외적 반응이 이전보다 또렷하게 의식되기 시작했고, 그것이 문장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자,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한 의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나를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독자의 반응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내 글은 괜찮은가, 이 이야기는 흔하지 않은가, 사람들이 공감할까. 평가와 반응, 결과에 대한 상상이 자꾸 글 앞에 놓였다. 글을 쓰는 것이 점점 '생산'과 '일'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나로부터 멀어졌다.


그렇게 나를 쓰겠다고 시작했는데, 나는 점점 '작가라는 역할' 뒤로 숨고 있었다. 정작 중요한 건 내 마음인데, 지금의 나를 그대로 쓰자고 시작했는데 자꾸만 '쓸 만한 이야기'가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시간조차 자꾸 흔들렸다.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앉아도, 말보다 한숨이 먼저 새어 나왔다. 그 한숨은 짧지도 길지도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포기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자꾸만 가라앉는 무게가 가슴 안쪽에서 퍼져 나왔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맴돌았지만 그것을 글로 끄집어내는 과정은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든 지금의 나를 써보기로 했다. 시선을 내부로 돌리는 것이 잘 안 되는 나, 나의 느낌과 감정을 글로 쓰기 어려워하는 나, 벌써부터 작가라는 틀에 갇힌 채 솔직한 글을 쓰는 걸 어려워하는 나를 말이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억지로 다듬지 않기로 했다. 감정을 정확하게 이름 붙이지 않아도, 완성된 구조로 말하지 않아도, 그저 그 순간 느껴지는 마음의 결을 따라가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 설득은 내게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위로였고, 조급해하지 말라는 다정한 허락이었다. 조금 모자라 보여도, 흐릿하게 흘러가도, 딱 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습이 바로 나니까. '나'를 쓰겠다고 했으니까.


예전처럼 정리가 안 돼도 괜찮다. 어쩌면 그런 글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대변하는 것일 테니까. 이렇게 불완전한 나, 흔들리는 나를 그대로 눌러 담으며, 다시 한번 반드시 써내겠다고 마음을 굳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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