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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테비 Feb 17. 2024

모란은 민화의 시작과 끝입니다

첫 작품 : 모란, 2022년 6월

스쿼시를 배운 적 있다. 첫 수업 시간, 코트장으로 들어간다. 라켓 잡는 방법부터 라켓을 드는 높이, 팔 각도, 팔을 내려 공을 치는 모습을 비롯해 공의 탄성 정도, 코트의 규격, 경기규칙도 설명해 준다. 스쿼시만 그럴까? 기본 동작, 경기 규칙같이 가장 기본을 잘 알아야 부상도 없고 실력도 쌓인다. 그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채화를 그릴 때는 수채 물감의 특성, 물에서 번지는 효과까지 두 색을 섞었을 때 예상되는 다음색을 설명해주기도 하신다.


민화를 배우기 위해 화실로 들어갔다. 준비물과 함께 민화를 그리는 전반적인 방법에 대해 설명해 준다. 민화는 동양화 물감이라는 다소 생소한 재료를 한지 위에 표현하는 그림이다. 한지 위에 물감을 바로 써야 하기 때문에 세필붓이라는 가장 가는 붓을 이용해 선의 굵기를 조절해야 한다. 실력이 늘수록 얇고 연하게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테다. 첫 시간이니 밑그림을 그리기 전에 세필붓에 물감을 적셔 선 그어보는 연습으로 손을 푼다. 첫 작품으로 무엇을 그려야 할까? 선생님께서 화실에 처음 오면 그리는 도안을 내어주신다. 민화는 도안 작품이다. 한지에 붓을 이용해 밑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도안을 한지 밑에 대고 그림을 그린다.


민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가 모란이다. 모란은 부귀영화를 의미하는 꽃이다. 민간의 그림인 민화라 염원을 담아 그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자식을 생각하고 모란을 그리면 자식의 부귀영화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다고 여긴다. 난 아직 누가 잘 되라는 마음을 넣을 여유가 없다. 모란을 모란답게 그리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염원만 있을 뿐이다. 같은 도안이지만 색깔까지 같을 순 없다. 무슨 색 모란이었으면 좋겠어요? 화실에 그려진 모란들을 본다. 흔한 주황계열의 모란부터 보라 흰색까지 다양하다. 처음부터 튀지 말아야지. 가장 많은 주황을 선택했다. 같은 그림을 두 개 그린다. 나머지 하나는 흰 바탕에 분홍색으로 그러데이션 되어 올라오는 그림을 선택했다.  

민화 물감은 수채화나 유화와 좀 다르다. 색이 보이는 주황을 한지에 칠했을 때 발색되는 정도가 다르다. 한지의 특성으로 변하는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생각하는 주황을 한지에 바로 칠하면 형광 주황에 가까울 정도로 밝고 쨍하다. 분홍은 흰색이라 불리는 호분과 빨강을 섞는다고 무작정 되지 않는다. 어렵기도 하고 오묘하기도 하다. 내 머릿속 계산을 믿으면 안 된다. 첫 그림이니 내가 모두 다 할 수 없다. 순간마다 선생님이 오셔서 색을 섞어주신다. 그리고 그림 한 귀퉁이에 칠해 발색정도를 본다. 미술학원에서 그려온 그림들을 가리켜 선생님 작품 아니냐는 야유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지금 내 모습이 딱 그렇다. 이 작품은 내 것인가 선생님 것인가? 선생님께서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색상표를 만든다고 한다. 색상표요? 물감의 색깔 이름도 모르는데 색상표는 무슨 색상표인가요? 지금 선생님 말씀도 다 튕겨 나가는데요. 수강 문의할 때 이만큼 어려운지 알려주시지 않았잖아요.


전 취미로 그릴 건데요?  연꽃은 언제 그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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