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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테비 Feb 24. 2024

전통과 현대 사이

책가도 : 책장과 서책 중심 그림 - 2022년 9월 완성


모란과 연꽃을 지나 책가도를 하기로 했다.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 넘어갈 때마다 선생님이 무슨 그림 그리고 싶어요? 하고 물어보신다. 화실을 쭉 둘러본다. 민화의 시작과 끝이 모란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벽에 걸린 대부분이 모란이다. 모란이 괴석과 함께 있거나, 병풍처럼 있거나. 뭘 그릴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책가도를 추천하셨다. 책가도라. 어울린다니 그려볼까? 하고 넙죽 받고 싶지만 보기만 해도 올곧은 선이 많다. 간격도 촘촘하다. 저걸 내가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저 못 그리겠는데요, 하고 머뭇 거리니 선생님께서 저 작품을 팝아트처럼 그려보자고 하셨다. 역시 난 취미로 그림을 그리니까.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하하)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팝아트 뭐지? 머릿속에 가물거린다. 이건 집에 가서 찾아보자.


팝아트 분위기 내는 기법이 있나요? 우선 밑그림부터 그려보죠. 역시나 도안을 대고 밑그림을 그렸다. 밑그림 그리는데만 2시간이 훌쩍 넘는다. 와,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취미생활자이다. 나는 2시간 기준 일주일에 한 번으로 수강했다. 2시간이 넘다니. 이건 계획에 없는 일이다. 2시간이 이렇게 짧았다고? 두통이 밀려올 지경이다. 바짝 신경 썼나 보다. 여기까지 할게요, 안녕히 계세요. 부랴부랴 화실을 나왔다.

구글 이미지

팝아트를 검색했다. 아, 이거! 앤디워홀의 그림이나 키스해링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다. 외곽선이 굵은 그림. 보통 검정으로 테두리를 굵게 딴다. 이 그림을 팝아트처럼 해본다고? 직선이 많은 그림에 검은색 테두리를 따려면 수전증이 하나도 없어야겠는걸. 그림도 큰데 얼마나 걸릴까? 모란과 연꽃은 한 달 정도 걸렸다. 이 작품은 두 달 생각하고 달려보겠다. 팝아트 느낌을 가지기 위해 민화에서 말하는 바림을 많이 넣지 않기로 했다. 바림은 수채화나 다른 분야에서 얘기하는 그라데이션이다. 밑색을 칠하고 두 번째 색을 일정 부분 칠하고 물기가 살짝 있는 큰 붓으로 물감을 당겨내며 자연스럽게 퍼트려낸다. 색을 당길 때 경계가 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경력이다. 초보일수록 바림(그라데이션)이 부자연스럽다.


밑그림을 그리고 초록, 갈색, 흰색 계열을 칠했다.
주황색 모란을 보라와 대비시켰다. 흰 바탕에 주황색 바림으로 그라데이션을 표현했다.

이제 겨우 세 번째 작품인데 크고 복잡한 그림에 발을 담그니 선생님도 불안하셨겠지. 바림도 최소한으로 하고 테두리는 먹으로 굵게 직선을 그어 전통민화와 현대민화 사이 어딘가에 나를 데리고 가신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제 드디어 제 길을 열어주시네. 어디 한 번 해 보십시다. 거짓말처럼 딱 2달 만에 완성했다.


완성 직전 그림을 걸어놓고 멀리서 한 번 바라본다. 그나마 멀리서 보면 내 그림이 마음에 들어온다.


완성된 그림(2022년 9월)

생각했던 모양새는 아니다. 민트계열을 중앙에 배치했는데 생각보다 잔잔하다. 포인트가 모란이 될 뻔한 그림에서 보라색에 주황색 라인을 둔 옆쪽 책이 포인트가 되었다. SNS에 올렸더니 보라색 영역이 예쁘다는 댓글이 많다. 내 맘 같다.


검정 테두리로 팝아트 효과를 주는 것이 아니라
보라색과 주황색 덕분에 팝아트 분위기를 낼 수 있었지 않았나 회고해 본다.
뭐든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이 좀처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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