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민화, 창작민화 작업에서 공모전 수상까지
전통민화와 현대민화 사이 어디쯤 있는 나는 틈만 나면 SNS에 민화 그림이나 예쁜 꽃 사진이 보이면 캡처하는 버릇이 생겼다(캡처해 놓은 사진도 정리가 필요한데). 책이나 인터넷으로 본 고(옛) 민화 사진은 색감이 너무 진하다. 민화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생활 모든 장면, 소품이 민화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화 그림을 보면 모란 중심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기도 하지만, 화병에 꽂혀 있는 그림도 있고 책과 꽃이 어우러진 작품도 있다. 나도 그런 분위기들의 사진들을 찾는다.
어김없이 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에 들어가기 전 선생님과 의논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선생님께 캡처해 온 사진 몇 개를 보여준다. 선생님께서 이런 사진은 그릴 수 없어요, 이건 괜찮네요 하고 조언해 주다. 그릴 수 없다는 사진은 이렇다. 생화 사진이나 꽃이 겹겹이 겹쳐 있어 밑그림 작업이 어렵다는 의미다. 민화는 밑그림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바림(그라데이션) 중심의 그림이지만 사실적인 그림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니 매우 세밀화되어 있는 사진은 쉽지 않다. 그렇게 후보로 몇 개가 골라졌다.
선생님께서 내 그림에 책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다. 책을 넣을만한 그림이 뭐가 있을까. 카페 갈 때마다 책 사진을 찍는 나의 핸드폰 앨범을 뒤져본다. 책을 쌓아놓은 사진은 별로 없다. 책을 쌓고 꽃을 넣는다면… 바구니가 좋겠다. 모란, 연꽃을 그려 보고 나니 수국을 그려보고 싶었다. 꽃 일러스트 그림들에 수국이 빠지지 않는다. 풍성해 보이고 색감도 다양해서 SNS에 여름이면 많이 등장한다. 그럼 수국바구니로 하면 좋겠다. 수국 바구니를 찾고 밑에 책을 쌓는 구도를 구상했다.
선생님께 전체적인 과정을 물어본다. 처음 해보는 과정이기 때문에 트레이싱지(기름종이)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려온다. 선생님이 검토를 해 주신다. 꽃을 단순화해서 그릴 수 있도록 선생님께서 요구하는 수정 사항을 거친다. 네임펜으로 다시 밑그림을 딴다. 적당한 크기로 그림을 맞춘다. 한지에 옮긴다. 색채를 한다. 몇 과정 되지 않아 보이지만, 막상 하게 되면 2달은 훌쩍 넘는 시간이다. 그림 그리는 과정을 가끔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완성작을 올린다. 지인들의 가장 흔한 질문은 몇 시간 걸렸느냐는 말이다. 시간으로 환산한다면 20시간에서 40시간까지 걸린 작품도 있다.
밑그림을 한지까지 옮기고 나면 한지에 바탕색을 입힌다. 보통 한지는 미색이기도 하고 물감과 같은 안료가 닿으면 번지기도 하기 때문에 염색과 동시에 풀을 먹이는 것과 같은 코팅 작업을 동시에 한다. 두 번째 창작인 위 사진은 전체적으로 화사하게 보이고 싶어 바탕도 노르스름하게 칠했다. 밑색이라고 하는 전체적인 밑바탕을 색칠한다. 아래 사진이 밑색 작업을 어느 정도 한 상태이고 첫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작품을 연달아했다.
밑색이 깔리고 나면 바림이라는 그라데이션 과정에 들어간다. 앞 연재에도 이야기했지만 바림은 밑색 위에 색을 칠한 다음 물감이 마르기 전에 물기가 있는 큰 붓을 이용해 물감을 끌어당기며 색의 농도를 조절한다. 사진을 찾는 과정부터 밑그림 작업까지 내가 직접 했기 때문에 내가 그릴 그림의 이해도는 선생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상태다. 색을 표현하는 방법이나 색감에 대한 의논은 선생님과 중간중간 선생님과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림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충분히 보고 밑그림도 충분히 본다. 원본 사진과 밑그림을 그림 그릴 때 옆에 두고 그리는 편이다. 밑그림 그릴 때 이해했다고 기억을 담고 있지 않을 수 있고, 기억은 오해가 되기도 하니까.
수국 바구니 작품에 처음 책을 3권 정도 깔려고 했으나 선생님께서 많이 깔아도 예쁠 것 같다고 해서 5권인가?로 늘렸다. 책 옆면이 보이는 부분은 책장을 표현하기 위해 얇은 선을 무한정 그렸다. 하루는 작정하고 선만 4시간 정도 그었던 기억이 있다. 책등이 보이기도 한다. 선생님께서 책 제목을 직접 지어보라고 하셨다. 제목, 이름 짓기 포비아가 있을 만큼 상상력이 부족한 나에게 이런 고비가 오다니. 그야말로 고비다. 책이 마무리되고 다음 화실 방문하는 날까지 일주일 남은 시간 동안 제목 짓기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청소년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집에 있는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어김없이 SNS에 올라오는 책 제목까지 훑어본다. 몇 가지 제목을 후보에 두고 수정해 본다. 선생님은 쌓아놓은 책 중 하나가 나의 자서전이라고 생각해 보라는 말에 ‘OO : 나의 자서전’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나머지 한 권은 기존에 있는 책 제목을 그대로 빌려왔다(참고로 정지아 작가가 제목은 저작권이 없다고 했다).
첫 창작 작업이 완성되었다. 이 두 작품은 공모전에 출품했다. 공모전은 작품 제목이 필요하다. 또 제목이다. ‘화병도’와 ‘DOBY의 서가’(기억이 가물거려서 정확한지 모르겠다)로 대구시 민화대전에 출품했다. 수국바구니는 크기가 작아서였을까. 입선하지 못했다. 나보다 선생님께서 더 안타까워하셨다. 시간과 정성이 훨씬 많이 들어간 작품이었기도 했지만, 완성도도 더 높았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만이라도 입선한 게 어디일까. 감지덕지하다. 입선 소식을 듣고 떠오른 첫 생각은 이랬다.
“내가 입선할 정도면 작품 내기만 하면 모두 상 주는 그런 대회 아니야?”
이 생각은 착각 중에 착각이었다. 수상한 작품들로 전시회도 한다. 전시 기간에 방문해 봤더니 입선이라도 된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나를 붙여주다니!! 이런 심정.
내 작품도 작은 크기가 아니라 여겼는데, 다른 작품들과 있으니 작디작아 보였다. 큰 크기에 꽉 채운 그림들에 압도당했다.
분명 취미로 시작했는데, 1년이 지나서 공모전 입상이라니. 점점 이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다. 마음 한 편에 이러지 말자고 깊어지지 말자고 하면서 다음 공모전에는 좀 더 큰 작품으로 도전해야지 하는 욕심이 동시에 생긴다. 사람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