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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테비 Mar 09. 2024

요가와 민화의 만남이라니

1년 만에 첫 전시를 하다

민화를 배운 지 일 년은 안 됐지만 해가 바뀌었다. 해가 바뀌고 얼마 되지 않아 선생님께서 공모전 준비하라고 해서 책, 바구니, 화병이 있는 작품 두 개를 준비했다. 내가 뭘 안다고 창작인가 싶었다. 선생님께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잘은 아니어도 착실히 준비하는 내가 꽤나 수행능력이 괜찮았는지 또 그리고 싶은 게 없냐고 물으셨다. 평생 함께 할 운동으로 요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요가원에 가면 벽에 걸린 천에 박힌 무늬를 볼 때마다 동양적이면서 오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분위기가 민화와 어울리지 않나 생각했다. 요가 동작 이름을 보면 고양이, 코브라, 개와 같은 동물도 있지만 나무, 연꽃 같은 식물 이름도 있다. 식물이라고 하면 보태니컬아트, 민화와 잘 어울리는 소재 아닐까. 그래, 요가를 민화에 넣어보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진다. 사고 영역은 이렇다. 생각에 생각이 어이 지는. 끊임없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 생각을 왜 하게 되었는지도 가늠하지 못하기도 하고, 이 생각까지 내가 하고 있다고 하며 놀라기도 하고. 여하튼 나는 요가 민화를 그려보겠다는 결심까지 한다.


그림 공부 1도 해 본 적 없는 나는 아이디어만 있지 기술은 없다. 사람 얼굴 하나 쓱싹쓱싹 스케치할 수도 없고. 그러니 SNS를 열심히 뒤져보는 수밖에. ‘요가 일러스트’를 검색어에 넣고 스크롤을 해댔다. 어떤 날은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캡처한 사진이 몇 십 장이 지나간다. 동작 사진만 캡처하지 않는다. 다양한 색감을 캡처했다. 어떤 그림은 색연필 그림 같고 어떤 이미지는 디지털 드로잉이다. 세밀화도 있지만 실루엣만 딴 이미지도 있다. 도구를 이용한 이미지도 있다. 플라잉 요가의 해먹, 요가 휠도 있다. 예쁜 이미지들은 많지만 내가 그릴 수 있는지, 민화와 어울리는 이미지인지 고민스러웠다.


비루하지만 그림 그려서 요가원에 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작은 크기로 그린다면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까지 가니까, 요가원 선생님들 동작을 그림에 넣어보면 재미있겠다 하고 더 이상 이미지를 찾지 않았다. 요가 수련이 끝나고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사진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선생님들이 4명 이셨고, 플라잉 장면과 요가 수련 장면을 2장씩 받으면 조화롭겠다 생각했고 요청드렸다. 민화 선생님과도 의논했다. 받은 4장의 사진과 어울리는 배경 꽃은 무엇일지 고민했고, 선생님의 작품도 보고 민화 이미지도 검색했다.



검색이 그림 그리는데 필수라니. 많이 봐야 그리는데 도움이 될 테니 레퍼런스라고 생각하고 이미지를 계속 검색했다. 벚꽃, 연꽃, 능소화, 목련을 최종적으로 선택했고 사진과 배치시켰다. 적당한 크기로 이미지를 출력하고 라이트 박스에 놓고 밑그림을 땄다. 사람의 동작이나 나무에 핀 오밀조밀한 꽃을 그리다 보니 4장이나 되는 그림을 그리는데 질리지 않을까 하는 자기 검열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선물한다는 말은 내가 왜 했나. 전문가도 아닌데 선물이라니. 말도 안 돼! 미쳤나 봐! 밑그림을 그릴수록 조잡하고 뻔한 그림으로 가는 것 같아 나를 책망한다.

그 와중에 선생님께서 이 시리즈를 회원전 전시에 걸자고 하신다. 전시라고요?! 제가요? 솔직한 마음은 이랬다. 선생님께서 아이디어가 좋다고 했다. 민화에 요가를 얹은 그림이 없다고 했다. 이 시리즈로 계속 그리면 좋겠다고 했다. 우선 이 4장 그림을 완성하고 말씀해 달라고 했다. 잘 그려야 계속 그릴지 말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비행기를 타듯 마음이 붕 뜬다. 나, 아이디어 잘 잡았나. 정말 가능성이 있나. 선생님의 조언도 듣는다. 테두리에 문살 무늬를 준다. 스펀지로 여러 색을 찍어보기도 한다. 전시장에 그림이 걸렀다. 아, 아이디어만 독특했지 색칠은 미흡하다. 뜬구름 잡는 마음이었네. 부끄럽다. 전시회에 걸린 그림을 보고 나는 왜 초라함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완성 후 오는 공허함인지. 회원들 그림과 나란히 놓고 나니 실력이 확 드러나서 현실 파악이 되었는지. 무력감이 나를 감쌌고, 전시 소식을 지인들께 알린 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그림을 그린지 딱 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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