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테비 Mar 23. 2024

취미가 일이 되면 어떤 기분이에요?

두 번째 공모전

민화 생활자 1년이 흘렀다. 딱 1년 만에 전시회라는 거창한 행사에 참여도 해 보고(전시회 이야기를 쓸지 고민 중). 전시회가 끝나 한시름 놓나 했더니 선생님이 공모전 준비 하라고 하셨다. 대구시 공모전과 전시회를 마쳤는데 또 공모전이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전개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감이 없다. 선생님은 당연히 화병과 책을 주제로 찾아보라고 하셨던가(기억이 가물). 내가 미리 검색해 둔 사진들이 있었던가.


첫 번째 공모전 그림 사이즈가 작지 않았다. 전지보다 작지만 SUV 자동차 바퀴를 덮을만한 크기지만 다른 그림과 섞여 있으니 작디작아 보인다. 이번에 사이즈를 좀 키워볼까. 책바구니와 화병에서 선생님이 꽃 종류도 그렇고 색깔이 너무 가지가지라는 조언을 해주셔서 유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선시대가 아닌 2023년을 살고 있고 민화는 대중적인 그림이니까 그 시대가 아닌 현시대 그림을 녹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책장, 책꽂이도 검색했다. 매번 검색에만 의지할 수 없기도 했지만, 컬러링 북 광고도 많이 떠서 민화에 쓸 수 있는 꽃그림책을 찾기 위해 서점에도 들렀다.


논문 쓸 때만 참고문헌이 필요한 시대는 지났다. 소설을 쓰는 작가도 그림을 그리는 작가도 참고문헌이 필요하고 내 방 하나 꾸미는데도 블로그 찾아보며 가구 사이트 뒤져가며 구경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는 모든 것이 참고문헌이 되는 세상이니까. 나는 우선 책을 좀 보고 싶어 서점으로 갔다. 이런 종류 책은 눈으로 봐야 한다. 취미 코너로 갔다. 갖가지 컬러링북이 있지만 내가 원하는 건 꽃 그림이다. 몇 권의 채을 뒤적였고, 팔로우하고 있는 작가 책을 발견했다. 꼭 동양화를 위한 책이 아니어도 되니까 다른 책 한 권도 더 구매했다.

책스타그램 중심 피드를 올려서 책 광고뿐만 아니라 책과 파생된 소품 광고도 많이 뜬다. 책장(?) 책꽂이(?) 광고가 뜨는데 무심히 그림에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캡처했다. 책꽂이로 쓰고 싶은 사진을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꽂아둬야지. 이런 방식으로 나는 그림을 모은다. 도자기 식기 광고에서 풍경으로 쓸 그림 하나 구하고, 무슨 광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이불이었던가) 커튼으로 쓸 수 있는 그림으로 재격이라 또 저장한다. 핸드폰 갤러리에 민화 참고 사진에 그림들이 쌓인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본 초롱꽃 이미지 : 꽃 모양 참고용

동네 문구사에 들러 트레이싱지라고 부르는 기름종이 가장 큰 사이즈를 샀다. 대폭 한지를 쓰기로 한다. 확대복사 하러 가기 귀찮아서 처음부터 트레이싱지에 연필로 그리고 한지에 바로 옮길 수 있게 책에서 뽑은 꽃 도안을 적당한 크리고 복사했다. 캡처해 놓은 사진들도 그림판에서 적당히 자르고 알맞은 크기로 모두 복사해 트레이싱지에 적절히 배치시켰다. 본격적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복사기가 있고 널찍한 책상이 있는 마을 도서관에서 주로 밑그림을 그렸다. 꽃에서 쓴 색깔로 책 색깔에 한 번 더 칠할 수 있게 비슷한 색의 책을 찾았다. 색동저고리가 되면 안 되는데.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림에 이러저러한 고민들을 해결하며 소품을 탄생시켰다.

완성된 책꽂이를 보니 2권 빼고 모두 여성 작가 책이다. 이 구성 보면서 내가 여성 작가 글만 골라 읽나 하는 의문에 빠졌고 책장에 꽂힌 내 책들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졌다. 그림처럼 내 책장 반 이상이 여성 작가 책이다. 성별을 가리지 않지만, 책장에 꽂힌 남성 작가는 이미 너무 유명한 거장(?)에 들 만한 소설가가 대부분인데 반해 여성 작가는 에세이스트부터 영역이 다양했다.  등단 제도권에서 자유로워진 풍경인가. 젊은 작가 대부분이 여성 작가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꽃 색깔에서 정한 몇 가지 색 중심으로 눈에 띄는 책 위주로 골랐는데 그려 놓고 보니 더 재미있게 읽은 책들이 뒤늦게 눈에 띄어 아쉬움이 남거나 더 좋아하는 작가 책을 넣을 걸 하는 안타까움도 인다. 이 사진을 인스타나 다른 SNS에 올려도 영향력 1도 없고 이 그림을 내내 볼 것도 아니지만 마음이 가는 작가 이름을 넣고 싶은 팬심은 어쩔 수 없다.


사진 한 장에서 소품 하나까지 신경 쓰면서 고르고 회사 끝나면 화실 가기 바쁜 내 일상을 보다 못한 퇴근메이트가 어느 날 퇴근길에 물었다.

“취미가 일이 되면 어떤 기분이에요?”

생각지 못한 질문이다. 글쎄요… 사실… 하며 입을 뗐다.

“정해진 마감에 해 내야 한다는 부담이 큰 것 같아요. 공모 마감 전까지 그림만 완성되면 끝이 아니라 사진을 보내야 하고 원서도 써야 하고 1차 심사에서 붙으면 바로 작품을 주최 측에 보내야 하기 때문에 공모 전까지 표구사에 작품을 맡겨야 하거든요. 실제 마감 날짜보다 더 일찍 보내야 하는데, 화실에서 제가 가장 늦게 마무리해서 주말에도 나가야 하니까 부담이 커요. 선생님께도 미안하고요.

내가 화실에 출근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취미인지 뭔지 모르겠어요. 민화 전문 작가도 아니고 말이에요. 이 길로 갈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생각하죠.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표구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이번에 사이즈 정말 크거든요. 전지 사이즈 정도 되는데 가로 폭이 넓어서 더 크게 보여요(머쓱하게 웃기).”


친구들은 내게 묻는다. 작품 하나 완성하는데 얼마나 걸려?

이 작품은 그래서 밑그림부터 시간을 기록했다. 최소 40시간 걸렸다. 이미지 찾고, 서점 가고 하는 시간 물론 빼고. 그것까지 하면 작품 하나 그리는데 쓰는 내 시간과 마음 씀은 80시간 같은 기분이다. 한번 빠져 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미로.

채색 끝낸 작품. 마스킹테이프는 맨 마지막에 : 꽃의 자서전2 - 특별상
꽃의 자서전1 - 특선

이번에 나는 운이 좋았다. 첫 번째 공모전에서 떨어진 작품과 함께 보낸 이번 작품. 두 개 작품 모두 상 탔다. 사이즈 작은 바구니 작품은 특선, 이번 작품은 특별상. 공모전에 입상하면 공모전 전시에 작품이 걸린다. 전시회 기간 중에 울산에 가볼까 했는데 여의치 않아 못 갔다. 작품이 화실로 왔고 집으로 가져왔다. 그제야 이 작품들에 미련을 버린다. 집 통로에 겹쳐두었다. 청소년이 그림은 바닥에 놓아야 낭만이라나 뭐라나.

 

시간은 후련하게 떠났지만 미련은 남는 법. 나뭇결이 도드라진 테이블 사진 찍기. 마스킹 테이프를 이용해 표현한 책꽂이에 꽂힌 책 사진을 캡처해놨다. 당분간 창작은 고이 접어두고 채색 실력을 좀 더 쌓아야겠다는 결론과 함께.

이전 06화 뭐든 장비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