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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테비 Apr 06. 2024

사심 가득 채운 아트페어

인사동 아트페어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나는 민화로 무엇을 이루어야겠다는 목표 없이 단순히 시작했다. 그렇지만 뭐든 꾸준히 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된다고 했다. 나에게도 점점 민화가 스며든다. 민며든다고 해야 하나. 안 보던 그림에도 관심이 가고 아트페어도 구경 가고. 심지어 내가 아트페어 참석자가 될 줄이야. 열정 가득한 선생님 덕이다. 문화센터에서 민화를 배웠다면 가당키나 했을 일일까. 시간 되면 수업받는 기분으로 뚜벅뚜벅 다녔겠지. 문화센터에서 요가를 하다가 정식으로 요가원을 다닌 후부터 뭐든 좀 더 깊이 있게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배우기 시작했다. 문화센터가 별로라기보다 수업의 깊이가 좀 더 다르기 때문에 내 마음가짐도 다르다는 걸 느꼈다. 또한 수강료에서도 차이 나기 때문에 더 열심히 다님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화실을 다니면서 내 마음이 점차 깊이 있게 바뀌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인스타 돋보기를 클릭하면 어느 순간부터 책 외에 일러스트도 같이 뜬다. 일러스트를 클릭하는 횟수가 잦아진다. 이걸 동양화 물감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자꾸 선생님께 DM을 보내 물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싶은 그림이 늘어갔다. 꽃그림만 보는 게 아니라 단순한 일러스트도 그려보고 싶었다. 색칠하는 기술은 모르겠지만 자료를 찾아보는(! 활용하는이 아닌 그저 찾아보는) 기술은 전문가 못지않다. 찾아보는 공은 들이지만 표현력은 매우 부족하다. 한마디로 깊이가 없다. 그래서 자꾸 선생님께 물어본다.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이 색이 맞는지. 디자인을 전공한 선생님이라 색깔을 선택하는 센스가 있다고 해야 할까. 당연히 전문가시니 나보다 안목이 상당하지. 선생님께서 너무 의존적인 수강생에게 가끔 하는 말씀이 있다. 자기 그림인데 자꾸 물어보면 어떡하나. 내가 그 그림을 어떻게 아느냐. 맞다. 내 그림이니까. 자꾸 부딪혀야 발전하겠지.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다.


인사동 아트페어를 앞두고 든 생각이다. 화실에서 실력이 가장 바닥인 나에게 선생님께서 아트페어 참여를 권하셨다. 하나의 부스를 선생님 중심으로 화실 수강생 몇 명이 같이 꾸리려고 하셨는데, 아마 그 말씀을 하실 때 내가 있어서 나에게 권했나. 선생님께서 나에게 창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권한다고 하셨는지 가물하지만 얼토당토않은 권유다. 기본이 탄탄한 선생님들 사이에서 내가. 그렇지만 이 흔치 않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취미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인가 하겠지. 1년 6개월쯤의 민화 취미자니까 슬슬 다양한 경험에 대한 욕구가 생기기도 하니까. 선생님의 권유에 “예.”라고 호기롭게 말해 본다. 말해 놓고 곧바로 두려움과 부담이 후회로 바뀌지만 일단 저질로 보는 사람마냥 말해 놓고 본다. 방금 글을 적어 놓으니 뭐든 저지르고 나를 채근하는 스타일인 것 같음이 확 드네.


아트페어는 박람회다. 즉, 나를 홍보하는 자리다. 나는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고 내가 그린 작품을 보여주며 판매까지 이루어지면 더할 나위 없다. 첫 참가자는 애석하게도 박람회를 몰랐다. 선생님께서 단순한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기한도 빠듯했다. 한 송이 모란이 중심으로 놓을 수 있는 그림은 무엇인지, 크기는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 핸드폰을 뒤적여 봤다. 모란은 ‘부귀영화’를 의미하니까 누군가에게 모란 한 송이를 받는다면 주는 사람의 마음에 감탄할 거라고 상상한다. 나의 부귀영화를 바라는 마음을 받다니. 모란 한 송이에 이런 장면으로 연결되다니. 생각이 많긴 하다. 상상력이 풍부함과 조금 다른 결인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을 즐겨한다. 모란 한 송이를 선물과 연결시키니 꽃집에서 꽃을 사고 넣어주는 종이 상자가 생각난다. 선물은 자고로 정성이니까. 타인의 부귀영화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더더욱 정성스럽겠지.

컨셉은 몇 단계 사고 과정을 거쳐서 탄생했지만, 역시나 그림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부족하다. 색깔이 다른 3개 모란으로 그림을 그렸다. 다 그리고 나서 그림을 보니 썩 내키지 않는다. 누가 봐도 초보 티가 확 난다. 모란과 함께 그린 탕후루도 그렇고. 모란의 부귀영화 선물을 생각했다면 달콤한 행운이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일어나다. 탕후루 일러스트를 캡처해 놓은 사진도 있으니 활용하면 되겠다. 지금 생각하니 일차원적 사고에 반성한다. 역시나 이과형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고는 알고리즘 형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메커니즘이나 시퀀스라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 어쩌겠나, 떠먹여 주는 거 받아먹는 공부만 거쳐온 성인인 것을. 글을 쓰려고 그림 사진을 다시 봐도 초라하네. 그림 그릴 당시 만족감이 떨어져도 며칠 지나면 한발 물러나서 바라보는 그림에 괜찮다고 할만한데 말이다. 아무래도 탕후루는 초등학생 선물용으로 어울린다. 누구 주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앞에 앉은 지인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당근에 팔라고 한다. 재료값이라도 벌어야지 하며 말이다. 탕후루 가게 사장님들에게 연락 올까(하하하, 근데 나 왜 갑자기 레몬나무 그리고 싶지?ㅋㅋ)

채색 중인 모란, 완성된 탕후루
김창완 아저씨 부스
사인 중인 2PM 황찬성

옷에 걸맞지 않은 단추 같은 느낌이다. 호기로움도 사라지고 그림에 애정도 그다지 없고. 이런 마음으로 아트페어에 참석하다니. 그래도 참석해야 한다. 왜? 연예인 특별전이 있으니까. 참여 연예인에 산울림 김창완, 2PM 황찬성, 배우 임원희, 이태성 등이 있다. 아트페어 전시장에 하루 전날 가서 그림을 걸었다. 오프닝 날, 김창완, 황찬성, 임원희, 이태성 모두 봤다. 와, 연예인들과 같은 공간에 전시를 한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연예인들과 사진 찍고 사인받고. 김창완 아저씨 부스가 가장 컸고 작품수도 500점이 넘었다. 사인회도 함께 한다는 소식에 전 날 그림 걸고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서 아저씨 책, <안녕, 나의 모든 하루>까지 구입했다. 매장에 없는 몇 년 지난 책. 딱 1권 남은 책을 구입했다. 전시 때문에 올라간 서울에서 1박 해야 했던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요가하러 망원동으로 향했다. 인사동에서 망원동으로 오가는 버스 안에서 아저씨 책을 펼쳐 읽었다. <안녕, 나의 모든 하루>는 산문집이다. 아저씨 표정만큼 따뜻한 글에 나도 나이 들고 있음을 마주했다.

두 번째 만난 김헤나 작가와 시간 보냈던 초콜릿책방 - 김혜나 작가 기다리며 읽던 <안녕, 나의 모든 하루>, 선물한 <잃어버린 사람, 김숨> 책
화실 선생님들과 인사동 근처에서 보낸 시간

짧은 1박 2일 동안 연예인을 만나고, 좋아하는 작가와 아침 요가를 하고 책방에서 커피 한 잔 나누고. 서울 사는 지인의 깜짝 방문에 호들갑 떨며 저녁도 먹고. 그러고 보니 이 날 내 생일이었다. 서울 올라간 날 생일이라고 수줍게 말하며 화실 선생님들과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 나눠 먹었다. 못 그린 그림은 이미 저 세상 마음에 있고 자주 갈 수 없는 서울에서 맛있는 저녁과 색다른 경험에 젖어있었다. 할 수 있는 거 몽땅 한 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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