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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테비 Apr 27. 2024

미니쿠페, 시간 여행 시키다

어쩌다가 나는 덜컥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했을까

지난주 해바라기 그림 사연에 이어 오늘도 누군가를 위한 그림을 그려주는 이야기를 한다. 한 살 차이로 언니 동생 하기 껄끄러운 동생이자 전 직장 동료인 친구는 자신의 초록색 미니쿠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 당연히 자신의 차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지만, 그는 인생차로 삼으며 버킷리스트 하나 이룬 셈으로 차를 구입했다. 그 전의 경차도 진심으로 사랑해서 동호회도 들고 이름도 붙여주었다. 미니쿠페는 오죽할까. 꾸미기 좋은 차라 스티커도 붙이고 아이템도 구입해서 달고 동호회도 들고. 초록에 빨강이 섞어있어 앙증맞다. 그의 차 꾸미기 열정을 들은 후로 지나가는 같은 차는 어떻게 꾸몄는지 유심히 살핀다. 꾸미기에만 열정을 쏟지 않고 동호회에 들어 같은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떼빙이라는 드라이브도 몰려다닌다. 커다란 규모의 카페에 나란히 주차시켜놓고 드론샷이나 2층에서 아래를 내려보며 자동차 뚜껑을 찍기도 하고 아예 대열을 만들어 설정샷을 찍기도 한다. 드라이브하면서 자동차 뒷모습을 찍기도 하고. 그만큼 차에 열정과 애정을 쏟는 사람은 없다.

그가 나에게 자기 차를 그려 달란다. 과거의 내가 친구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뭐라고 했기에 기억도 안 나는 말을 하는지. 기억에 없지만 분명히 그려준다고 했을 행동이기에 알았다고 한다. 광택 나는 쿠페에 동양화 물감이라니. 어울릴까. 비슷한 색감을 낼 수나 있을는지. 차만 덜렁 그리기는 또 심심하잖아. 애니메이션이나 특징만 뽑는 캐릭터도 만들고 싶지만, 지금까지 이 연재를 읽으신 분이라면 아시다시피 나는 그림을 배운 적이 1도 없다. 자동차 일러스트만 열심히 보고 또 보고 했다. 애니메이션 업처럼 자동차 뒤에 풍선을 수두룩하게 달아볼까. 애니메이션 카처럼 어느 나라 상징물과 배치시켜 볼까. 친구가 아직 이 차로 해외에 가지 않았지만, 작년에 제주도, 곧 일본에 갈 예정이다. 프랑스에 다녀왔다면 에펠탑과 그리기만 하면 그뿐인데 말이다. 나는 왜 이 얼토당토않은 고민에 빠져 있는지. 도무지 무슨 소품과 이 차가 어울리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뻔하디 뻔한 그림이 되지 않도록, 누가 봐도 초보가 그린 어설픈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궁금하다(실제로 이 그림을 그린 후로 캐릭터 그리기나 드로잉을 배우고 싶다).

화조묘구도 :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나의 시선으로는 콜라보, 청소년 시선의 커스터마이징 하기로 했다. 민화 도안을 뒤적뒤적한다. 유유자적 나무 아래 한가롭게 쉬는 모양이면 좋겠다. 자동차가 들어가기 적당한 배치여야 한다. 며칠 동안 도안을 찾아 헤맸다. 화실에 간 날. 선생님께 몇 개 도안과 자동차를 보여주고 최종 합격(?)한 화조묘구도 도안을 주문했다.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 패드 효과를 이번만큼 톡톡히 봤다. 친구가 보내온 자동차 사진에 밑그림을 따고 프린트했다. 선생님과 의논할 때 자동차 크기를 물어봤다. 주문한 도안의 크기를 감안하고 배치시켜 최종 내가 그릴 그림의 크기를 가늠했다. 또다시 나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밑그림까지 다 따고 나니 선생님께서,

“이 작품 전국민화대전에 출품하시죠?” 하신다.

매번 똑같지만 놀랐다. 이 공모전은 생각지도 못했다. 작년 화실 선생님 몇 분이 준비 중인 것을 멀찌감히 지켜봤지만, 올해부터 많은 회원들이 내기로 했다. 선생님께서 ‘전국민화공모대전’과 ‘대구민화대전’ 중심으로 준비하라고 회원들께 알린다. 여기 출품하는 건 괜찮다. 다만 이 그림을 언제 친구에게 줄지. 이 친구는 1년 넘게 그림을 기다렸을지 모르는데.

“미안하다, 그림을… 공모전에 출품해야 할 거 같다. 니한테 그림이 언제 갈지 모르겠다.”

“괜찮다, 언니야. 근데 공모전 내면 내가 그림 돈 주고 사야 되는 거 아니야?!”

“돈은 무슨 돈이고! 이만큼 기다린 것도 대단하데. 사진 받고도 몇 달째고?”

그림에 기대를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시간을 벌었다. 밑그림을 한지에 옮기고 채색한다. 나는 도무지 무엇을 그리고 싶었을까. 자동차가 자동차가… 점점… 민화스럽지 않고… 정물화스럽다. 장난감 피규어 따라 그리기? 같은데?! 공모전 제출 시간도 다가오는데 이게 무슨 방향성인가. 다시 조급해져 온다. 선생님… 저 정말… 그림 쌓아놓고 공모전 때마다 턱턱 하나씩 꺼내서 제출하고 싶어요. 이런 심정을 내만 안다. 그만큼 쌓아놓으려면 화실 회원 중 화실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그리는 회원처럼 일 년 365일 그려야겠지. 마음만 앞서고 행동은 느릿느릿이다.

이번에도 공모전 제출 일자에 촉박하게 마무리 지었다. 재주소년 북토크 신청해 놓고 갈 엄두를 못 내 날려버리고 말이다. 선생님이 정하신 3월 말까지 마무리는 못 했지만, 다행히 그다음 주인 4월 첫째 주에 마무리해서 서울에 보냈다. 회원들 그림 모두 받아 보내주신 선생님께 감사할 뿐이다.

자신의 차를 너무나 사랑해 그림을 부탁한 친구가 작명에 일가견이 있다. 이번 작품 작명을 부탁했다. 시간 여행하는 어감을 주는 제목을 원했다. 내가 여러 개 대충의 제목을 제시했고, 그가 보완해서 완성시켜줬다. 제목은 “시간차, 여행.“ 퍽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지금 나는 요가 여행 중이다. 어제 공모전에 참여하는 회원과 선생님이 있는 단톡방 알람이 울린다. 이번주가 3차 심사란다. 모두 주말에 좋은 꿈을 꾸길 바란다고 했다. 그림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기운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왕 출품했으니 입선이라도 하길 바란다. 작년 출품작이 천 작품이 넘었다고 들었으니 입선이라도 어딘지.


나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줄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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