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그리기
세화전까지 끝나고 나니 벌써 2024년이다. 다음 그림은 무엇을 그릴지도 고민이고 조급하지 않게 그림을 그리는 마음, 내 그림의 방향성도 고민하게 된다. 창작민화라는 거창한 단어를 가지고 화실을 다닌 게 아니라 소소하게 그리고 싶은 거 그려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일이 거창해진 기분이다. 화실 다른 선생님들께 창작하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니. 디자인의 디도 모르고 미술학원의 미도 모르는 내가, 참… 그려 놓은 그림을 집에 고이 모셔 두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림 그려서 사람들에게 선물하려고요, 하며 화실을 갔다. 한 달에 한 작품을 끝냈는데, 두 달 세 달이 걸리더니 굵직굵직한 행사에 남들에게 나눠주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마음은 어디 갔는지.
해가 바뀌어 여유 생겼나 했다가도 그림 그리는 족족 출품할 곳이 정해진다. 같이 일했던 동료의 문자를 받았다.
“언니, 그림 그려준다더니 언제 그려줄 거야?!”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진짜 지키지도 못할 약속 남발하며 다녔구만.
“알겠다, 그려줄게. 근데 언제 완성될지 모른데이.”
그려달라는 소재의 사진을 받아 그림 준비를 했다.
중간중간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SNS로 알렸다(뒤에 적을 예정). 그러다 갑자기!
“언니, 나 해바라기 좀 그려줘.”
“어? 해바라기?”
진짜 뜬금없이? 싶지만, 아니다. 생각났다!!! 이 친구(1살 차이에 동생은 무슨)는 내가 민화 배우러 다닌다고 했을 때부터 해바라기를 얘기했다. 그때 내가 알겠다고 했다. 실력이 조금 늘면 그려주겠다고 했고 화실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해바라기를 물어봤다. 기억나지 않지만, 흔한 해바라기를 그린다는 데 회의적인 회원도 있었다. 그런가? 귀가 팔랑거린다. 그러다가 잊고 있었다. 친구가 다시 상기시켜 줬다. 지난가을쯤부턴가? 화실에서도 해바라기 그리시는 회원이 계신다. 선생님도 이제 우리 화실도 해바라기 생긴다고 했다.
이미 이 친구가 그려달라는 걸 그리고 있으니, 한 송이만 있어도 되고 꽃만 있어도 된다고 했다. 화살에 있는 두 종류의 해바라기를 보여줬다. 하나는 해바라기 리스고 하나는 화병에 꽂힌 해바라기다. 리스를 그려달라고 했다가, 이내 아니다, 화병으로 그려달란다. 알았다고 그리고 있는 것 마무리하고 그릴테니 지금처럼 잊고 있어라고 얘기했다. 바쁜 것 끝나면 해바라기 그리려고 인터넷에 뒤적거렸다. 다시 생각하니 화실에 있는 해바라기들은 송이가 많다. 저거 그리려면 못해도 한 달은 붙잡고 있어야 할 거 같다. 해바라기 꽃 한 송이 꽃잎만 있는 그림을 그릴까 싶어 캡처하고 화실로 갔다.
선생님께 해바라기를 그릴텐데 선물용이다, 그러니 크지 않아도 된다, 화실 도안은 꽃이 너무 많다. 이 모든 생각을 전달했다. 나의 생각을 전달하면 선생님은 정리를 잘하시고 핵심을 딱 잘 뽑아주신다. 화병 해바라기를 보여주시며 다 그리지 말고 아래 3송이를 왼쪽,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그리고 화병을 납작하게 잡아보라고 했다. 해바라기 3송이보다 4송이가 푸짐해 보인다. 워낙 우리나라 사람들은 홀수 좋아하고 하필 4송이라서. 민화는 아무래도 서민 그림이고 소망을 담은 그림의 역할도 강해서 4송이 꽃을 그려도 되는지 물어봤다.
상관없다는 선생님 말씀에 4송이로 밑그림을 만들었다. 화실에 라이트박스가 있다. 여기에 종이를 데면 아래에서 비쳐오는 빛에 선이 또렷하게 보인다. B4 종이 두 장 크기다. 그림을 그리고 남은 한지들을 가져와 크기를 가늠했더니 4장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지가 있다. 밑그림을 4장 모두 그리고 고화(바탕색을 물들이며 옛그림 느낌도 내고 물감이 번지지 았게 전처리 하는 과정)처리를 하려고 했다. 밑그림을 만들고 한지에 밑그림을 옮기고 있으니 3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큰 작품 하나 끝나서 한 주 쉬고 간 화실이다. 7시 전까지만 그리고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2장밖에 만들지 못했다.
선생님을 부른다.
“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2장을 집에서 만들어올까요? 아니면 운동 다녀와서 그릴까요?”
“운동 갔다 와서 고화처리 하고 마무리하시죠. “
이번주도 그림을 그리다 말고 스쿼시 하러 다녀왔다.
이번 수업에 유난히 얼굴이 벌게졌다. 화실에 들어섰더니 회원님들도 선생님도 운동을 얼마나 했길래 하고 묻는다. 얼굴이 반쪽 됐다나. 얼굴도 좋지만 뱃살 반쪽은 안 되는지(하하하). 한숨 돌리며 농담하며 바탕색을 정한다. 해바라기에 어울리는 바탕색은 떠오르지 않는다. 야생화 그린 해바라기에 보라색으로 바탕을 칠했더니 그림을 그냥 처박아 둘만큼 인위적으로 보인다. 아크릴물감이라 그런지.
한지에 밑그림과 어울리는 황토색에 고동색 살짝 넣은 배경색을 물들이며 말리는 시간을 가진다. 밑그림을 한지에 그리며 집중한 시간에 한 템포 쉼을 불어넣는다. 이 밑그림에 바탕색이 다 마르면 어떤 분위기가 될지 아직 모른다. 막연한 밑그림이 있을 때보다 그림의 분위기는 한껏 살아난다. 전환점이 생기는 순간이다. 옛 그림을 재현하는 그림이든 창작하는 그림이든 참고하는 그림에 홀려 따라 그리고 싶어 졌다면 바탕색이 정해지고 물들이고 나면 이제 내 그림으로 들어온다. 그림이 펼쳐진다는 문장처럼 나에게 문을 열어준 그림에 내 시간을 펼쳐본다.
4장 중 2장 밑그림을 그렸다. 2장 더 그리면 3명에게 선물할 수 있다. 누구 주지? 요구했던 1명은 확정이고 마음 속에 1명 있고. 나머지 2명은 누구?
그림 그리는 재미다. 해바라기 끝내고 드림캐처 그려서 나눠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