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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테비 May 04. 2024

장비빨을 넘어 성실함

해바라기 화병 4장 = 가내수공업

지지난 주 해바라기 도안 2장을 그리고 한지에 색을 입혀놓고 화실을 나왔다. 화실 가는 날이 목요일이었고, 필리핀 여행으로 한 주 쉴 거 같아, 수요일에 화실을 다녀왔다. 여느 때보다 오래 있을 수 없어 욕심부리지 않고 해바라기 도안 4장 끝내고 왔다. 이번주부터 채색이다. 립스틱 빨간색을 말하라고 하면 우리는 몇 가지를 얘기할 수 있나. 와인색, 붉은 장미색, 쨍한 빨강, 주황빛 섞인 빨강, 매트한 빨강, 촉촉한 빨강, 새빨강, 어두운 빨강 등 이름은 몰라도 떠올려지는 것만 10가지 색이 될지 모른다.

마찬가지다. 민화에 사용하는 동양화 물감도 쨍한 색부터 파스텔 톤을 내는 색깔 등 다양하다. 호분이라고 얘기하는 흰색을 한지에 바르면 쨍하면서 맑다. 모란에 물감을 한 번만에 완성되지 않고 여러 번 칠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쨍한 흰색을 처음부터 칠하면 차가움을 남길 수 있다. 그래서 호분(흰색)에 황토를 살짝 넣어 노란빛이 돌까 말까 한 부드러운 흰색을 만든다. 흰색 계열도 호분에 황토를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베이지에 가까운 흰색으로 점점 다가갈 수 있으니, 노랑 계열은 또 어떨까. 해바라기 일러스트 그림을 참고해 보면 쨍한 노랑 같은 개나리색부터 연노랑까지 다양하다. 학교 다닐 때 배운 배색을 참고하면 노랑에 주황을 섞어 조금 더 진하게 만들거나 노랑에 흰색을 넣어 연한빛을 낼 수 있다.

붉은색 만드는 물감

그 사이 어디쯤을 고민하며 물감을 보고 있다. 진노랑과 연노랑 어디쯤을 가장 먼저 칠해야 할까. 선생님이 오신다. 색을 만들어보자고 한다. 이번 노랑을 위해 나는 노랑, 황토, 주(귤색에 가까운) 색을 꺼내 놓았다. 선생님은 노랑, 황토, 호분을 적절히 배합해 주신다. 아! 호분. 호분을 빼먹었네. 이 색을 쓰더라도 물 양에 따라 밀도가 달라져 색은 또 달라지다. 그러니 처음 붓에 섞은 물감을 묻혀 여러 번 붓에 칠하다 보면 물기가 말라 노랑이 진해지기도 한다. 종지에 물감이 탁해진 상태에 다시 붓으로 섞어도 색이 조금 달라진다. 물을 조금 더 첨가해 진한 노란색을 다시 연하게 만들며 밑그림에 색을 채운다.

해바라기 꽃 잎 하나하나 따로 칠했다. 만든 밑그림을 한지에 대고 옮겼지만 그림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색을 한 번 칠하면서 꽃잎의 방향이나 겹쳐진 꽃잎들의 본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단점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과 꽃잎 색깔이 컴퓨터로 칠한 것과 달리 조금씩 차이 난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빛에 따라 색은 모두 조금씩 다르니까 꽃잎 색이 조금씩 다른 것이 세상이치일지 모른다. 여기에 그러데이션이라는 바림까지 하면 생동감이 조금이라도 표현되지 않을까.


한지 하나에 해바라기 꽃이 4송이 있다. 4송이를 차례대로 칠하지 않고 대각선 꽃을 칠하고 나머지 꽃을 칠했다. 물기가 남은 색에 바로 옆 꽃잎을 칠하다 보면 번질까 걱정이기도 해서. 물 조절이 결국 전문가인지 아닌지 판가름할 테지만 혹여나 번질까 무서운 초보니까. 한지 한 장을 모두 칠하고 시계를 보니 1시간 가까이 걸렸다. 4장이면 4시간이 걸릴 판이다. 16송이 중 6송이쯤 그리고 오늘도 스쿼시 강습 들으러 잠깐 나갔다 왔다. 선생님이 물감 마르지 않게 뚜껑을 살짝 덮어주셨다. 다시 돌아와 살짝 마른 물감에 물을 조금 더 첨가해서 옅은 노랑으로 다시 색칠하기 시작했다.

스쿼시 강습 갔더니 수업 듣는 회원께서 음료수를 나눠주셨다. 잘 마실게요.

두 송이 칠하고 다음 종이로 넘어가기도 하고, 꽃 잎 하나에서 앞쪽 잎을 먼저 칠하고 뒤쪽 잎을 칠하기도 해 본다. 빛 얘기를 해서 말인데, 앞 꽃잎이 진한지 뒷 꽃잎이 진한지 아리송했다. 앞 꽃잎으로 그림자가 생기니 겹쳐진 뒤 꽃잎은 좀 더 진한 빛을 띨 거라 예상한다. 이런 계산을 칠하는 동안 몇 번이나 했다.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 그릴 거면 그냥 프린트하지 뭣 하러 그리나 싶기도 했다. 너무 계산적이잖아. 꽃잎 색이 모두 다르다는 거기까지가 적당한 생각이었다. 그냥 물감이 번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내 맘 가는 순서대로 칠하기 시작했다.


부쩍이던 목요일 화실 저녁 회원들 한 분씩 인사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어느 회원께서,

4장이나 그려요? 여기도 가내수공업 하네.


하셨다. 그렇네, 가내수공업이네. 가내수공업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4장 그리는 동안 내공 쌓는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색 연습을 다시 해보자. 조금 더 매끄럽고 속도를 조금 더 올리는 시간이 되길 빌어본다.



어제 오후 단톡방이 시끄러웠다. 오랜만에 집중하며 직장에서 일하고 있어 나중에 확인했는데 기쁜 소식이 들린다. 3월 화실에서 쏟아 완성한 작품이 전국민화공모전에서 입상했다. 출품한 화실 회원 모두 입상했고 자축의 시간으로 시끌했다.

모두 축하드립니다.
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많이 배웁니다.
큰 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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