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는 끝날 줄 모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연재 목차를 봤다. 4월 20일 해바라기 도안과 함께 글을 썼다. 선생님과 의논하며 해바라기 도안을 그렸던 민화 수업이었다. 다음 주부터 한지에 그림을 옮기고 한지 바탕색 올리고 뭐 아무튼, 채색에 들어갔다. 말의 요지는 4월 하순부터 해바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긴데… 5월이 되고 친정 아빠 제사, 스쿼시 코치 송별회로 빠지고 선생님 일정으로 휴강하고 했더니 두 달 동안 4번 갔다. 그러니 진도가 나가야 말이지. 더구나 5장이나 그리니 말이다. 화병 하나에 해바라기 4송이가 얼마나 걸린다고. 천만에 만만의 말씀이었다!!(으이구)
대체로 나는 이런 식이다. 민화 배우면서 그리는 그림을 SNS에 올렸더니 디엠이 온다. 딱히 할 말이 없잖아. 그러니까, 다음에 보고 그림 그려서 한 장 줄게. 이런 무모한 말을 한다는 점. 그림을 그리고 나눠 주는 건 선물하기 좋아하는 오지라퍼인 나로서는 아깝지 않다. 문제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밑색(그림의 전체적인 기본 색)까지는 신나게 칠한다. 이때까지는 예쁘다는 말을 연발한다. 문제는 디테일? 그러니까 기술적인 부분이 들어가면서부터 입을 다문다. 그 뒤로는 말 안 해도 뻔하다. 바림(그라데이션)이 들어간 순간부터 내 그림에 정이 떨어진다. 자동차도 그랬다. 방향을 잘못 잡았는지. 갑자기 정물화처럼 명암을 오만상 넣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때 배운 지식 다 등장하는 줄. 그림을 그리다 지치는 것과 다른 기분인데… 정을 떼려는 행동 같다. 완성해도 감흥이 없다. 표구로 그림을 받고 나면 무언가를 했다는 성취감은 따르지만, 내 그림을 볼 줄 모른다. 성취감에서 끝.
해바라기 5장 그리고 있는 지금은 그럼 오죽할까. 지난주 쉬고 목요일 화실에 갔더니 선생님께서 시니컬해져 왔다고 한다.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완성되지 않은 그림을 보고 남은 순서를 머릿속으로 굴린다. 시간을 가늠한다. 이번 주 중에 끝내고 싶지만, 불가능이다. 일주일 휴식기 동안 무조건 끝내고 싶어졌다. 퇴사 후 휴식기에 들어가니 주위에서 쉬는 동안 계획이 있느냐, 여행이라도 가느냐고 묻지만 없다고 대답했다. 대청소, 자동차 수리, 미용실이 가장 큰 숙제다(미용실은 정말… 진짜 큰 숙제다). 이것만 해도 일주일은 순삭일 텐데 사이사이 해바라기를 완성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아! 7월 15일까지 4개 남은 요가 수강권도 써야 되는데. 숙제가 많네. 큰일이다.
그 와중에 운동도 포기가 안된다. 레슨이 없어진 스쿼시. 화실에 가기 전에 운동부터 했다. 화실에 있다가 스쿼시 하고 다시 화실로 돌아왔어야 됐는데, 스쿼시부터 한다고 일정을 변경했더니 그림 그릴 시간이 없다는 걸 감지한 나는 도구를 펴고 자리를 잡자마자 선생님께 다음 주 언제 언제 수업하는지 물었다. 다행히도 토요일(오늘) 선생님께서 화실에 나온단다. 주말 오전은 무조건 소파와 한 몸으로 누워 있어야 하는데 몇 시에 화실 문을 여는지 물어봤다. 11시부터란다. 마침 청소년도 학원 가야 되니까 움직일 수 있긴 한데 11시라니.. 부담인데..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청소년이 시험기간이라고 5시에 스터디카페에 간다고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뒤척이다 7시 다 돼서 다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떴더니 9시 반이다. 에구궁.. 대충 찌개 끓여 먹고 나와도 11시가 넘네. 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안 와요?”
“지금 가는 중입니다, 늦잠 잤어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버린 꼴이라니. 화실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선생님이 오후 4시 넘어 나가신단다. 나는 하던 거 마저 하고 일어나도 되는지 물었다. 6시까지 해바라기 꽃잎 테두리 선을 그었다. 말로는 가내수공업처럼 무념무상으로 하겠다 했지만, 선 그은 지 4시간쯤 되니 손가락이 아프다. 연필을 오래 쥐고 있는 느낌이다. 으.. 관절 생각할 나이군. 눈이 많이 나빠서 얼굴을 그림에 거의 밀착하듯 갖다 붙이고 안경 너머로 그림을 봐야(노안, 중년안과 조금 다른 양상) 선을 얇게 그을 수 있다. 단점은 두통이 밀려온다. 오늘은 최대한 얼굴을 들고 그리려고 노력했다. 적정한 각도를 찾았다. 그랬더니 목이 윽씨 아프네. 다들 이렇게 어떻게 그리지. 목디스크에 손가락 관절염 오겠다. 제발 중간에 쉬기도 하자. 한 번 앉으면 끝날 때까지 엉덩이를 거의 안 떼서. 물도 안 먹고. 의식적으로 스트레칭도 좀 하고. 요가 동작 배웠다가 뭐할라꼬! 이럴 때 써먹어야지.
해바라기 그려서 나눠 줄거라고 지인들께 일찌감치 연락했는데 얼마나 기다릴까. 물론! 잊고 있으라고 신신당부 했다. 부지런히 그리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