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유랑기 4(24. 04. 26-30 보홀 요가 여행)
울산 야외 요가를 시작으로 알게 된 진서 선생님을 인스타 팔로우하며 소식을 보고 있다. 선생님은 야외 요가를 꾸준히 열며 수련을 한다. 유목의 느낌으로 자유롭게 클래스를 열고 닫고 하면서 선생님의 색깔을 채우고 있다. 가끔 보니 요가 여행도 기획한다. 필리핀 보홀에 요가 여행을 2번째 연다는 소식을 접했고, 나는 며칠 고민했다. 며칠 고민했다는 표현을 쓰지만 고민한다는 문장을 보면 가고 싶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테다. 스스로 반문한다. 답을 정해 놓고 고민하는지 아닌지. 가고 싶기 때문에 고민할 테니 가고 싶음에 집중한다. 가고 싶지만 고민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회사 일정, 집안일이 가장 크다. 회사 일정을 대충 가늠해 보고 남은 연차를 세어본다. 집안일이 걱정되긴 하는데, 3월 속초 여행에서 이미 목, 금으로 평일 집을 비워봤으니 마음만 먹으면 된다. 그럼에도 염려스러움이 드는 건 아무래도 청소년 시험 기간이 코 앞이긴 하다. 그러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있다고 청소년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학원 스케줄이나 픽업은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미 가고 싶은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기 때문에 상황은 내가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면 그뿐. 참가 문의를 하고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지난 2월 말의 일이다. 비행기를 예약하고 속초를 다녀왔다. 속초 다녀올 때만 해도 요가 여행이 많이 남았다고 여겨졌지만 시간은 언제나 내 속도에 맞춰 증가했다 줄어들었다 하지 않는다. 유유자적 흐르고 나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기듯 날짜를 맞닥뜨리게 된다. 4월에 접어들어 동료들이 여행 준비 잘 되어가냐는 질문은 한다. 2주 남짓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하나 둘 인터넷으로 살펴봤다. 우선 필리핀 여행 준비물부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공항세가 나도 모르게 포함되어 있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필리핀은 입국이 아닌 출국할 때 공항세를 내야 한다. 미리 꼭 준비하라는 당부 글이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어떤 글에는 거스름돈도 없다는 말이 보이니까 미리 560페소(필리핀 화폐 단위)를 준비해야겠다.
가장 기본적인 환전이나 벌레 퇴치제 등 모기를 대비해야 하는 준비물도 있지만, 무엇보다 부산에서 출발해야 하는 나는 대구에서 김해공항까지 셔틀부터 예약했다. 비행기표와 공항셔틀을 예약하고 나니 반은 준비한 기분이다. 요가매트를 빠뜨리면 안 된다. 처음 요가 여행 신청했을 때 매트 대여 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꼭 미리 준비해야 한다. 코로나 때 요가원에서 개인 매트를 준비하라는 안내를 받으며 구입했던 매트에 케이스가 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 따로 스트랩을 준비하지 않았다. 아뿔싸! 매트를 말고 케이스에 넣었더니 돌돌 말린 매트가 케이스에 맞춰 지름이 늘어나 꽉 조인다. 필리핀에서 처음 하는 요가 수련에 매트를 케이스에서 뺀다고 식겁했다. 이 때문에라도 스트랩을 사야겠다. 한국 가자마자 스트랩부터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3박 5일 동안 필리핀에 있을 예정이고 26일 저녁부터 29일 오전까지 수련이 있다. 26일과 29일을 제외한 27, 28일은 하루 두 번 수련을 한다. 세어보니 총 6번이다. 요가복을 6벌 챙긴다. 6벌이 적은 양인지 많은 양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날씨가 어떨지 몰라 하루 종일 같은 옷을 입어도 되는지 땀범벅으로 몇 번을 갈아입을지 모르겠고 세탁시설이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숲 속 깊숙한 곳에 숙소가 위치해 있는 느낌이고 시골의 전형이다. 여느 사각형 반듯한 리조트 모습이 아니라 개인이 쓸 수 있는 세탁시설은 아무래도 구비되지 않아 보여 선생님께 물어봤더니 역시나 없단다. 단 손빨래는 가능하단다. 그럼 비누도 챙겨야겠다. 일반 세탁비누대신 바디워시 비누로 모든 대체 해야겠다. 하필 만들어 놓은 비누가 없어 여행 직전 비누, 폼클렌징 등 대용량은 아니지만 돌아와서 집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용량으로 구매했다. 짐이 별로 없을 거란 막연함에서 구체적인 무게가 점점 그려진다. 요가매트도 케리어에 들어갈 거라는 감에서 케리어에 들어갈 리 만무하다는 현실적 자각은 짐을 효율적으로 잘 싸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아무리 빨래를 한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어떨지 모르니 요가복(상, 하) 6벌에 여벌 레깅스 2벌, 반팔 2벌을 더 챙기고 나니 케리어가 꽉 찬다. 관광할 것도 아닌데 이만큼 차서 깜짝 놀랐다. 분명 숲 속에 처박혀 요가만 할 건데. 와! 짐을 좀 더 줄여야 한다. 출발할 때부터 요가복 차림으로 떠나면 되지. 집에 올 때는 뭐, 어떻게 되겠지. ‘텐트 밖은 유럽’에 나오는 한가인처럼 같은 옷을 입을 수 있을 만큼 입어보자라는 심정으로 출발했고 밤늦게 도착한 필리핀에서 다음 날 첫 수련까지 같은 옷으로 버텼다. 훗! 빨래 거리 하나 줄였는 걸?!
이후 면 재질의 풍덩한 요가 바지(흔히 알라딘 바지?)는 더운 날씨에 입자마자 답답하고 안에서는 땀이 흘러 내 판단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레깅스를 입었으면 입을 때부터 고생스러웠을지 모르겠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는데 그때부터 땀이 주르륵 흐르니까. 얘기했지만, 시골의 나무 위 오두막 같은 외관의 숙소라 에어컨은 당연히 없다. 낮은 선풍기가 개인 매트마다 구비되어 있다. 이게 어디인가 싶을 정도다. 더구나 필리핀도 이상기온 현상으로 고온이 지속되고 있어 낮 활동은 무리다. 에어컨이 없는 학교는 휴교령이 내릴 정도라니. 요가 선생님께서도 필리핀 4월이 이만큼 덥지 않은데 너무 덥다는 말을 하며 현지인들도 힘들어한다는 말을 덧붙여 주셨다.
기후 위기는 이제 일상 단어가 되어가는 것일까. 조천호 박사(구, 국립기상과학원 원장) 강의를 들었다. 강의 내용 중 유럽에서 산업화로 기후 위기를 발생시켜 놓고 이제와 우리가 기후 위기를 위해 이만큼 노력하고 있다고 적도 국가들에게 생색낸다는 말이 있었다. 필리핀이든 적도 국가든 기후 위기로 삶에 영향을 받는 나라는 점점 늘어난다. 우리도 이들에게 빚진 마음으로 조금 더 기후 위기 정책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개인의 노력 문제가 아닌 정책, 기업의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번 여행에서 카페에 들어가 보면 빨대가 모두 종이 내지는 스테인리스였다. 반면 해변이나 길바닥에 쓰레기는 넘쳐난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개인이 아니라 일회용품 정책이 우리보다 잘 되어 있는 모습에 집중해 우리도 변해야 할지 모른다. 계곡에 들어갈 때, 보트를 타고 강을 둘러보는 SUP 체험을 할 때 환경세를 거둬간다. 우리는 겨우 국립공원에서나 입장료를 받는데.
2년 전쯤 주말마다 동네 뒷산을 1년 동안 올랐다. 쓰레기를 담을 봉지를 준비해 갔다. 뒷산을 오르면서 세금을 낸다는 기분으로 쓰레기를 담아왔다. 사람이 쉴만한 곳에는 항상 담배꽁초(산에 왜?)와 커피믹스 꼬다리(이지컷으로 자르고 휙 버린 잔해물?)가 있다. 그 외 사탕껍질 등 자잘한 쓰레기가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쓰레기는 그것대로 꼭 주워 와야 할 것 같아 담고, 큰 쓰레기는 또 어디까지 날아갈지 몰라 담아 오면 봉지가 가득 찼다. 아무리 작은 뒷산이어도 세금을 거둬 환경 정책에 쓰는 것이 오히려 나같이 쓰레기 보며 주울지 말지 고민하는 스트레스를 줄여주면 좋겠다. 지금은 쓰레기 보며 투덜거리는 내 모습을 보기 싫어 산에 가지 않는다. 얼마 전 TV에서 울릉도 입도 비를 받으면 좋겠다는 도민들 인터뷰를 봤다. 캠핑족들이 들어와 많은 쓰레기를 남기고 떠나는 사람들 때문에 울릉도에 쓰레기가 날로 넘쳐난다고 했다. 뒤처리는 남은 도민들의 몫이니까. 이미 짐을 한가득 싣고 온 관광객들이 울릉도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은 생각보다 작다. 거기에 남긴 쓰레기까지 생각하면 관광객 받고 싶지 않은 도민의 마음이 십분 이해 간다.
진서 선생님도 요가 여행 공지에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자 텀블러를 꼭 챙겨 오라고 했다. 나는 텀블러와 함께 손수건 10장 정도를 챙겼다. 물티슈 쓸 일이 많지 않겠지만, 있으면 편리하게 쓰는 물건이 물티슈니까. 텀블러 2개와 손수건까지 챙기니 케리어 부피는 계속 늘어난다. 울산에 요가원을 운영하시고 프리다이빙을 하시는 선생님이라 요가 후 해양쓰레기 줍기도 꾸준히 하신다. 해양 쓰레기 줍기까지 동참하지 못하니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일회용품을 덜 써보리라 마음먹는다. 편리한 화장품 샘플이 집에 없기도 하지만 작은 용량 화장품들을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