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9
“새로 빨아 바싹 말린 흰 베갯잇과 이불보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거기 그녀의 맨살이 닿을 때, 순면의 흰 천이 무슨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당신은 귀한 사람이라고. 당신의 잠은 깨끗하고 당신이 살아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잠과 생시 사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순면의 침대보에 맨살이 닿을 때 그녀는 그렇게 이상한 위로를 받는다.”
(한강, 흰, 71)
언제서부터인가 베갯잇이나 이불보, 침대시트로 하얀색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자주 빨아도 분명 금방 오염된 게 보일 것 같아 흰 색은 피하게 된다. 사용한 시간이 흔적을 남기는 게 당연한 건데 그 자국이 분별없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게 부끄럽다. 자주 관리하지 않는 게으름이 들키는 것 같다. 그보다는 오히려 먹색 같은 어두운 색, 베이지 빛 같이 오염이 가려지는 색만 고르게 된다.
하얗지는 않아도 순면의 침대보가 살에 닿는 느낌은 같지 않을까. 요즘은 건조기를 사용해 세탁 후에 천이 보들보들해지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햇볕에 바싹 말려 빳빳한 느낌을 좋아했다. 까슬거리고 조금은 거칠게 닿는 천의 느낌.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깨끗하다 여겨졌다.
계절에 따라 천의 종류가 조금씩 달라지면 살에 닿는 느낌도 달라진다. 새벽 바람에 오소소 살이 돋을 때면 보드라움을 찾게 된다. 따뜻한 보들거림. 곧 말캉하고 보들거리는 침대보를 깔아야 할 계절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