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고 난 뒤의 예술오늘은 아빠의 기일이다.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면서 아빠 기일이 있기 전 주말쯤 엄마집에서 식사를 하거나 숙소를 잡아 모였다. 코로나 이후로 다 같이 모이기 힘들게 되면서 이제는 각자 상황에 맞게 움직인다.
올해 우리는 딱 아빠기일에 맞춰 내려왔다. 마침 아이 방과후 학교 방학이기도 해서 사흘정도 놀다가 갈 계획이다.
아이가 찍어준 잠만보 구름이다신랑은 일을 해야 하니 아이와 둘만 간다. 아이와 둘만 친정에 가는 일은 거의 드물기 때문에 기분이 이상하고 허전하면서 또 자유롭다.
출발을 하려는데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다가 금세 쏟아붓는다. 나는 못 봤는데 아이는 번개가 치는 것도 봤다고 했다.
멀지 않은 코스지만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아이가 먹고 싶다는 간식을 샀다. 회오리감자와 옛날핫도그 사이에서 고민하던 아이는 핫도그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내가 주문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기다리는 동안 호두과자도 먹고 싶다며 2차 주문을 한다.
그래,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렴. 이 재미에 휴게소 들르는 거지.
중간에 비가 오다 말다했지만 잘 달려 도착했다. 비가 많이 온다며 우리가 오는 길을 걱정하던 엄마는 비가 그쳤는데도 큰 우산을 들고 아파트 입구에 나와 계셨다.
집에서 잠깐 쉬고 나와 아빠의 산소를 가기로 했다. 아빠는 집 근처 공원묘원에 계신다. 지난 주말에 언니네가 왔을 때 가보셨다는데 비를 맞고 풀들이 수북하게 자라있다고 한다.
공원묘원 입구에 있는 화원에 들러 하얀 국화를 샀다. 세 송이만 사려다 다섯 송이를 달라고 했다. 엄마와 네 남매를 합쳐서 다섯이다. 포장 없이 철사로만 한 번 묶어 달라고 했다. 국화의 향기가 참 향기롭고 싱그럽다.
명절 외에는 늘 조용한 공원묘원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풀숲에서 작은 여치들이 팔딱팔딱 뛰어오르며 우리를 반겨준다.
아빠의 산소 앞에서 저희 왔다, 잘 계셨냐, 별일 없으시냐 말을 건넨다. 예전에는 조용히 인사만 하고 떠났다. 쑥스럽고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지만 소리 내어 얘기하는 것만으로 그냥 나에게 위로가 된다는 걸 느낀다.
돌아가셨을 때 아빠는 지금의 나보다 더 젊었고 나는 여덟 살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혼자 살아내셨고 어렸던 네 남매는 지금 모두 사십 대가 되었다.
국화꽃 다섯 송이를 다시 한번 꽉 묶어 아빠의 산소 앞에 놓는다. 생전에 술을 좋아하셨지만 오늘은 꽃만 들고 왔다. 술을 좋아하는 사위가 같이 왔으면 한 잔 따라드렸을 거다.
길게 자란 풀들이 다리를 간지럽게 하는 게 싫은 아이는 업어달라 난리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얼굴도 잘 모르는 외할아버지의 산소가 지금 아이에게 큰 의미가 없겠지.
살아계셔서 업어주시고 안아주실 외할아버지가 있었다면 참 좋았을 거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오래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우리 동네에 트럭을 몰고 과일인가 채소를 팔러 온 아저씨를 보고 숨이 멎게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우리 아빠랑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진짜 우리 아빠가 살아 돌아온 게 아닐까, 우리 가족 모르는 어떤 일이 생겨서 저런 낯선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가슴이 두근거렸던 그 어린아이는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아빠가 다시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 소원이었던 나는 지금도 좀비영화를 보면서 왠지 모를 슬픔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마지막까지 슬픔으로 남을 거 같다.
소중한 이의 부재에 적응을 하고 살아왔지만 마음속 아주 작은 조각 하나가 채워지지 않고 비어있는 이 느낌은 이렇게 나이를 먹도록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