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행복한 보스턴의 교실
아이들이 행복한 보스턴의 교실
아이들의 등굣길. 발걸음이 가볍다.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간다. 미국에 살며 학부모로서, 교사로서 느끼는 미국 교육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이 학교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제 곧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는 아이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늘 즐겁게 학교에 다니고 있다. 미국 교사생활 7년, 학교 오기 싫다는 아이를 별로 보지 못 했다.
스트레스 없는 학교. 즐거운 교실. 아이들이 행복하다. 학교는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 교류하고 소통하는 곳이다. 교실에서는 이야기를 나누고 놀며 웃음꽃이 피어난다. 생각하고 표현하며 배우고 마음이 자라는 공간이다. 학교 오기가 신난다. 집에 있는 것보다 학교에 나오는 것이 더 좋다는 아이들도 많다. 주말에도 학교에 오고 싶다는 학생들도 있다.
행복한 학교 생활의 비결은 무엇일까?
학생들의 하루가 시작되는 등굣길을 먼저 들여다본다. 노란 스쿨버스에서 아이들이 내린다. 학교 건물 앞에서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아이들을 맞는다. 활짝 미소를 지으며 한 명 한 명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다. 수백 명 학생들의 이름은 물론 그들의 성격, 취미까지 다 꿰뚫고 있는 교장과 교감. 아이들의 등굣길을 맞는 것이 그들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굿모닝, 라일리! 포니테일 머리가 아주 귀엽구나!”
“ 하이, 브라이언! 파란 티셔츠가 역시 잘 어울려!”
다정한 교장선생님의 미소와 인사로 시작되는 아침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다.
“나를 반기는 학교, 나를 소중히 여기는 선생님들, 이 학교 커뮤니티는 늘 나를 기쁘게 맞는 곳이야!”
내가 미국 공립학교에서 교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나의 시선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등굣길이었다. 아침에 교장이 아이들을 관심과 애정으로 맞는 광경에 놀랐다. 한국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접하지 못 한 경험이었다. 그 모습에 매료됐다. 뒷짐을 지고 지시하는 리더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있는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고 부대끼는 교육자로서의 리더를 보았다.
등굣길을 미소로 맞는 교장과 교감의 모습은 내가 근무했던 네 곳의 학교가 다르지 않았다. 겨울이 유난히 긴 보스턴.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에도 학교 건물 밖에서 스쿨버스의 배차를 관리하고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건물 안으로 안내하는 일은 교장과 교감의 역할이다. 그들은 매일 아침 즐겁게 이 일을 한다. 아침 등교 안내를 마치고 들어오는 교장, 교감을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보람과 책임감에 찬 그들의 얼굴을 본다. 새로운 관리자의 롤모델을 발견했다.
교장선생님이 열어주는 아침은 상쾌하다. 이런 따뜻한 느낌으로 등교하는 아이들.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의 얼굴 표정은 밝았다. 아이들의 하루는 즐거운 등교에서 시작됐다.
아이들의 발걸음은 교실로 향한다. 교실에 들어서면 환한 미소로 학생들을 맞는 선생님들. 학생들을 친구처럼 대한다. 권위 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교사와 학생이 친구처럼 어우러져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이 교실이다. 서로 눈을 맞추고 바라보며 소통하는 교실. 친절한 선생님. 학생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교사의 태도는 학생들이 편안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교실은 교사가 권의 의식을 내려놓고 학생들과 만나는 공간이다.
교사는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다 불러주며 아침 인사를 한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다. 특히, 미국 문화에서는 그렇다. 내가 투명인간이 아니라 상대에게, 이 집단에서 인지되고 존중받는 대상이며 일원임을 확인시켜주는 행위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줄 때, 내가 그에게, 그 집단에서 의미 있는 존재임을 확인한다.
교실에서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은 생기발랄하다.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한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여길까를 걱정하지 않는다. 혹시 내 말이 틀리지는 않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 교실은 언제나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수용적인 분위기가 행복한 교실의 보물 1호다. 이 보물은 내가 보스턴에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처음 발견한 것이었다. 교사가 되어 많은 보스턴의 교실에서 이 보물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보스턴의 교실은 학생들을 편안하게 감싸 안는다. 수업 시간에 정답을 말하지 못해도 수업과 상관없는 생뚱맞은 발언을 해도 부끄럽지 않다. 미국의 교실은 실수나 부족함을 다 포용한다. 실수에 대해 아주 관대한 분위기다. 나의 교실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교실에서도 학생이 실수를 해도 교사나 다른 학생들이 지적을 하거나 웃지 않는다. 실수를 했을 때 당혹감이나 창피함에 대한 공포가 없다. 틀린 답을 말해도 괜찮다는 믿음이 있다. 교사들은 실수를 통해 성장하고 배움을 강조한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러기에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한다. 나를 표현하는데 스스럼이 없다. 솔직한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들 모두의 발언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모두가 존중받는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와 감정을 드러낸다. 이 안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사고와 감정을 주고받으며 마음이 자란다. 즐거운 배움의 경험이다.
보스턴의 교실은 학생들을 비교하지 않는다. 교실은 개성과 다양성이 헤엄치는 바다다. 학생들은 저마다 고유한 모양과 색, 향기를 지닌 꽃과 같다. 교실에서 학생들은 저마다 고유한 특성의 꽃으로 피어나 어우러진다. 장미, 라일락, 백합, 튤립... 그 어떤 꽃이 더 아름답고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각자 저마다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다. 아이들도 각자 고유한 개성과 특성이 있기에 그 자체로 소중하다. 개성과 다양성을 가치 있게 여긴다. 학교 문화에는 학생 저마다의 개성을 소중하는 태도가 배어있다.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을 발산하는 아이들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배우고 자란다. 이런 아이들을 획일화된 잣대로 재단해 우열로 줄을 세우거나 등수를 매기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모든 아이들이 개체로서 존중받는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특별하고 중요하다. 7년간 교사 생활을 하면서 교사로부터 학생들을 비교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학생들의 능력에 대해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듣지 못했다. “무엇을 못 한다”라고 기술하기보다는 “어떤 영역과 어떤 부분에서 더 성장하기를 바란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분명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내가 존중받고 소중히 여겨짐을 느끼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모두 행복하다. 학교와 교실에서 학생들 개개인의 개성과 독창성이 존중된다.
보스턴의 교실은 질문하는 학생을 좋아한다. 학생이 질문을 하면 즐겁다. 내가 신이 난다. 질문이 많은 교실은 살아있는 교실이다. 우리의 배움은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지적 호기심이 학습의 출발이다. 질문이 넘치는 교실은 활기가 넘치는 교실이다.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생각이 오고 간다. 하나의 정답은 없다. 엉뚱한 대답도 대 환영이다. 어떤 대답도 모두 가치 있게 여긴다. 모두의 생각이 공유되고 그 생각들이 모여 서로의 사고를 확장시킨다. 창의성이 꿈틀거린다. 교실은 질문을 통해 생각하는 힘이 자라는 공간이 된다.
아롱다롱 일곱 빛깔로 곱게 물든 무지개를 보는 듯, 서로 다른 아이들의 모습이 예쁘다. 학습의 취향, 방법과 속도가 다 다른 아이들. 소리 내어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 시각 보조자료를 사용하면 이해가 빠른 아이, 문형을 사용하는 말하기를 즐기는 아이, 단어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 더디지만 열심히 따라오는 아이.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모여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특성과 방식에 맞게 배운다. 좀 늦으면 어떠랴. 각자의 속도로 배우며 자란다. 보다 나은 나, 성장하고 진보하는 나를 발견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할 뿐이다. 최선을 다 한다면, 그것 자체로 훌륭하다.
오늘도 보스턴의 교실에서 가르친다.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고 교실.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그 자체로 나는 수업에 기여하는 참여자가 된다. 용기 있는 학생들의 자기표현에 긍정의 말이 쏟아진다. 아이들은 칭찬과 격려 속에서 행복하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교실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저마다의 빛깔과 모양, 향기로 피어나기를 바란다. 나의 교실에서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자라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