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은행나무에 대한 단상

by 연두

가끔 놀러 가는 배구 동호회 카페에 "푸른 솔"을 아이디로 쓰시는 분이 있다.


그분께서 키우는 은행나무가 정말 신기해서 사진을 캡처해왔다. 나는 은행나무는 처음부터 커다란 은행나무였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애들이 내가 처음부터 엄마였다고 여긴 것처럼... 내 초등학교 일기장을 읽으면서 우리 애들이 하는 말, ‘엄마는 그때부터도 글 쓰는 게 엄마답다’고 한다. 내게 있어 친정엄마도 처음부터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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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젊음을 향유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망각한다. 엄마는 꿈도 없었고 그저 우리 삼 남매를 키우는 역할꾼으로만 생각했었다. 엄마도 여성이었음을, 감성이 풍부한 여인이었음을 이제는 헤아릴 수 있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은행나무도 그러했다. 처음부터 은행나무는 커다란 나무였다고 생각했다. 은행나무가 작은 열매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상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 단단한 사고를 깨뜨리는 사진을 보여 주신 분이 푸른 솔님이다. 초록의 가녀린 줄기가 단단한 옹이를 가진 나무껍질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치열한 사투를 벌였을까? 사진을 올린 날짜를 보니 오월이다. 신록의 계절. 갓 태어난 은행나무는 따스한 햇살과 간지러운 바람을 맞으며,

"세상은 참 좋은 곳이구나!"

그렇게 여기겠지? 필요한 수분은 화분 아래에서 공급되고, 광합성에 필요한 만큼의 햇살은 창문을 통해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상처받기 쉬운 여린 떡잎. 그 잎을 꺼내기 위해 은행은 갖고 있던 외피를 벗어야 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보면 그런 구절이 나온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은행은 두렵지만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외피를 벗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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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작열하는 태양을 견디어야 한다. 강하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견디어야 한다. 햇살을 받지 못하는 오랜 장마기간을 버티어야 한다. 살아남으려면... 이제 은행나무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다. 벗어버린 외피에 집착하면 안 된다. 자신의 세계를 찾아야 한다. 나를 발견하는 일. 나의 이십 대가 치열했음은, 지금의 나를 갖게 한 시금석이다. 거저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간과했던 사물들에 의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마땅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에 대해 고마운 마음 든다. 뿌리를 통해 빨아들일 수 있는 수분이 있음에, 은행잎을 간간히 흔들어 주는 얕은 바람에, 양분과 호흡을 통해 힘의 원천이 되어주는 햇살의 따사로운 결에,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곁에선 작은 은행나무조차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고마운 벗이다.


드디어 은행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다. 난 이 사진을 보면

"나도 밤나무야"

라고 이야기를 들었던 옛이야기가 생각난다. 누구 일화였지? 이율곡이던가, 밤나무 삼천 그루를 심어 보시하지 않으면 목숨을 유지하기 어려워, 삼천 그루의 나무를 정성껏 심었으나, 안타깝게 그중 한그루의 나무가 죽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해 목숨이 경각에 달리게 되었는데, 커다란 수목들 사이에서 이제 겨우 싹을 틔운 작은 밤나무가 "나도 밤나무야."라고 읊어주어 살아날 수 있었다나? 이 나무가 말하는 것 같다.

"나도 은행나무야."


은행나무의 자존심. 푸른 솔님께서 얼마나 마음을 다해 정성껏 키우셨을까? 환한 빛을 안고 있는 은행나무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더할 나위 없음. 위풍당당. 청년의 은행나무는 거리낄 것 없다. 세상이 내게 덤빈다고 해도 나는 젊음이 있어 두려울 것 없다. 은행나무의 위용이 당당해 보인다. 나의 눈부셨던 시간들도 그러했었다. 가장 멋지고 아름다웠던 시간에 남편을 만난 것 같다. 서로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그리고 눈이 맞았었겠지. 그건 우리 부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 대개의 부부들은 서로에게 최고일 때 만나 서로 사랑을 하고, 그들의 좋은 유전자를 지닌 2세를 그들의 symbol로 남겨두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산전수전. 산을 오르다 보면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여럿이다. 스트레이트로 치고 올라가는 길도 있고, 굽이굽이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는 길도 있고, normal하게 평탄한 길을 따라 오르는 길도 있고, 만나는 곳은 정점이지만 서로가 오르는 길은 선택이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의 개념은 아니다. 자기 성향이고 부부의 성향이다. 서로 조율이 되지 않는다면 각자의 길을 가면 될 것이고 함께 할 수 있다면 서로를 의지해 손을 잡고 오르면 그만이다. 이미 최고의 순간을 만끽한 사람들 아니던가? 더 바랄게 무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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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보면

"몹시 쓸쓸할 적엔, 해 지는 걸 바라보고 싶어 져......"

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 노래를 들어보면 인트로 부분에 "컹컹" 개 짖는 소리와 귀뚜라미소리 풀벌레 소리가 나오며 자연스럽게 어스름 저녁이 연상된다. 내 마음을 흠뻑 적셔놓는 광경과 소리들이다. 난 그랬다. 해 질 녘이 되면 슬퍼졌다.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고, 엄마 냄새가 맡고 싶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밥상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주발과 갓 구워내 구수한 들기름향이 가득한 파래김이 있었고, 엄마가 맨손으로 그 김을 싸서 입에 넣어주시면 삼 남매가 제비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입을 벌리고 받아먹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난 내 엄마와 아버지를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아니다. 내 엄마와 아버지에게 사랑을 담뿍 받았던 것 같다. 이제는 돌아서야 할 황혼 녘이 가까워진다. 사랑했던 부모님 중, 이미 한분은 작고 하셨고 남은 한분은, 아직 내 곁에 계시다. 감사하게도...


내가 벌써 오십 후반이다. 바람같이 달려온 시간들. 그 시간 앞에 무력해진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을 더 헤아릴 수 있을까? 겸허해져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 나도, 또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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