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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y 05. 2022

14일 차

2022. 05. 06

Q. 당신이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언제인가요?

스무 살.


Q. 일평생 당신을 지배해온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은 왜 그토록 집요하게 당신을 지배했나요? 또 당신은 왜 그 사람에게서 놓여날 수 없었나요?

엄마라고 쓰고 싶지만, 더 정확히는 나일 겁니다. 내가 나를 집요하게 지배한 이유는 사랑받고 싶어서,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서, 버려지는 것이 얼마나 아프지 알기 때문에, 사랑이 얼마나 좋은지 알기 때문에, 내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내가 아프지 않길 바래서 뭐 그런 이유였죠. 다만 나는 내가 행복하기를 빌어준 적이 없습니다. 왜 여전히 '행복'이라는 것에 그토록 회의적인 기분이 드는 걸까요? 최근에서야 나는 내가 잘 살기를, 잘 지내기를 빌어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행복이란 건..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나는 그 지배를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내가 나에게서조차 버려진다면, 나는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거든요. 내게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어요. 왠지 나는 아직 행복보다는 생존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나 봅니다.


Q. 가출한 경험이 있어요? 언제, 왜 가출했어요? 가출의 경험은 당신의 인생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쳤나요? 가출한 뒤 집에 돌아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어요?

가출이라는 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나는 단 한 번도 가출할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첫째는 집구석도 이리 험난한데 바깥세상은 얼마나 더 험난할까. 하는 생각을 너무 어렸을 때부터 해버린 것 같고. 둘째는 그 험난한 세상에 내가 내던져졌을 때, 아무도 나를 도와주거나 구해주러 오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나는 언제나 내가 조금이라도 더 안전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했어요. 늘 나의 안전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네요.


Q. 지금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살.


Q. 그것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당신을 힘들게 하나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내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뭐 나이가 들면서 모두가 겪는 그런 일일지도요..) 20대까지 내가 알고 있는 내 몸의 공식들이 모두 깨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맞다면 어느 날엔 내가 엄청 유연해질 수도 있겠네요! 나는 언제나 자고 싶은 아이였죠. 어떤 주말은 48시간 중 40시간을 잘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자는 게 내 맘대로 되지 않기 시작했어요. 눕는다고 잠이 오지 않고, 피곤함에도 눈이 떠졌죠. 심지어 잘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더 남았는데도 불구하고요. 나는 마음의 병을 너무 많이 앓아서 내 인생에 신체 상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자전거를 타다가 손이 부러졌지 뭔가요? 내가 처음 겪어보는 고통과 두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까짓 거라고 표현하더군요ㅎㅎ 나는 내가 살이 찔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 나는 50kg를 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었죠. 그런데 이게 하나, 둘씩 올라가더니 몸이 가로로 3cm 커져버렸습니다.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맘고생이라도 사서 해서 돌아올 수만 있다면.. 하지만 내 몸에 붙어버린 셀룰라이트들이 마음이 아파옵니다. 그저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는데 무엇이 저리도 울퉁불퉁 덕지덕지 붙은 걸까요?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것은 내가 변비에 걸릴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발 그것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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