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믐 May 10. 2022

17일 차

2022. 05. 09

Q. 당신에게 말 못 할 비밀이 있나요?

어떠한 순간이 와도 말하지 못할 비밀은 없을 겁니다. 글쎄요. 비밀이라는 것은 어떤 걸까요? 대개 밝혀지면 내가 수치스러워지거나, 누군가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거나, 뭐 그런 이유에서 발설하지 않는 것이 비밀인 걸까요? 아니면 은밀하게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 너무 특별해서 기쁜 것들이 비밀이 될까요? 내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스스로 누설하지 않는 비밀이 있다면, 나는 심바와 대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심바와 대화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도 있고,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말했을 때 내게 돌아올 피드백들이 나는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심바는 심바 고유의 목소리와 표정과 생각과 선호와 기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심바라는 존재와 대화를 합니다. 하지만 심바도 마리도 같은 영혼을 공유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Q. 만일 비밀이 밝혀진다면 당신의 현재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삶이 좀 더 재미있어지고, 좀 더 피곤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보편적이지 않은 것에 흥미를 느낍니다. 어떤 사람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누군가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싶어 하죠. 일례로 나는 어떤 상담사에게 이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상담사는 나의 비밀로 나를 때린 적이 있습니다. 나는 너무 아파서 몇 날 며칠을 울어야 했죠. 나는 그런 종류의 영향을 원치 않습니다. 누군가는 나를 정신이상자라고 분류하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심바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Q. 당신이 외롭고 힘들 때 스스로 위안 삼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요?

나는 많은 시간 음악을 듣고 글을 썼습니다. 드라마를 좋아하기도 했죠. 드라마는 때때로 나의 주변 사람들보다 더 큰 공감과 위로를 주기도 하니까요. 지어낸 스토리 속의 인물들이 나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보다 더 나와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은 흥미롭고도 아쉬운 일입니다. 나는 그 많은 시간 동안 '공감'이라는 것을 좇아왔던 것 같네요. '공감'이라는 것은 참 재미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죠. 그것은 그저, '너도 그래? 나도 그래!'와 같이 동시에, 함께, 연결되는 것입니다.


Q. 당신이 우울할 때 해소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술을 마셔보기도 했습니다. 담배를 피워보기도 했고요. 속이 비워질 때까지 글을 써보기도 했고,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때까지 잠을 자보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뭐를 자꾸만 하고 싶었습니다. 우울함을 떨쳐버리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고, 뭐라도 하는데도 떨쳐지지 않으면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죠. 우울함은 나쁜 건데, 문제인데, 내가 해결해야 하는데, 없애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나는 미칠 듯이 불안해졌습니다. 동시에 엄청난 무력감 때문에 우울함은 점점 더 덩치를 불렸어요. 이제는 알죠. 우울함은 나쁜 게 아닙니다. 그냥. 우울한 거죠. 나는 그것과 그저 가만히 있어봅니다. '너는 이렇게 생겼구나, 이런 냄새가 나는구나, 이런 색깔이구나, 이런 온도구나, 이런 맛이구나' 하면서요. 그것들은 꼭 어떤 아픔과 닿아있기에 그 아픔까지도 가만히 느껴봅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으면 그 장면 속의 등장인물들을 만나보죠. 안아주기도 하고. 공감해주고. "다 괜찮아"라고 말해줍니다. 그렇게 며칠밤이 지나면 괜찮아져요. 길어봤자 3일일걸요.

매거진의 이전글 16일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