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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y 10. 2022

19일 차

2022. 05. 11

Q. 당신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언제 어떤 경우인가요?

뭔가를 억지로 해야 할 때, 그런데 억지로 하지 않으면 신뢰를 잃을 것 같을 때, 나의 자유와 연결이 상충할 때, 나의 자유와 안전이 상충할 때, 인생, 삶 자체, 존재함, 인간으로 존재함.


Q. 가장 많이 울었던 때는 언제이며 그 이유는요?

어른이 된 어느 날, 그런 나를 발견한 적이 있었죠. '나는 분명히 솔직하게 얘기했는데, 이게 가장 솔직한 진실이 아니었다. 그 밑에 더, 그 밑에 더, 계속해서 더 솔직해질 수 있는 진실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밑에 무언가가 더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철옹성 같은 저항을 다 치워내고, 가장 끝에 있는 진실, 가장 마지막 솔직함을 내가 허용할 때에 나는 가장 많이 울지요. 예를 들면, 죽어라 원망했던 사람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받아들이는 순간 같은 것.


Q. 당신이 반복하여 겪는 시련이 있나요?

많았죠. 예로, 나는 일평생 반복적으로 꾸는 악몽이 있기도 했었죠. 그것은 등장인물만 바뀌고 똑같은 레퍼토리를 거의 20년을 유지해왔는데,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그로 인해 분노하는 나를 조롱하고 비웃으며 버려두고 가버리는 꿈입니다. 매번 바뀌는 상대방은, 나의 '생존'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사람들이죠. 가족, 연인, 가끔은 지독한 '갑'인 집주인?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기도요. 나는 수치심에 격분하며 오열하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상대를 때려도 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최근에 나는 수치심과 관련되어 조금 다른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는데, '수치심은 나쁜 게 아니다.'와 '나의 특정한 행동이나 상태를 존재와 동일시할 때에 느끼는 것이 수치심이다. 즉 일종의 저항이다.'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수치심에 연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보다 조금 덜 숨기려고 해요.


Q. 왜 같은 시련을 반복한다고 생각하세요?

시련이란 내가 흘려보내 줘야 하는 감정을, (아픔을 유발하여) 나쁘다고 판단하여 무의식에 가둬놓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죠. 그러한 감정을 '내면 아이'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내가 맞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뭐 어찌 되었건 감정의 본성은 머무르는 게 아닌 흘러가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찾아오고 떠나가고. 그런 애를 빛도 안 드는 감옥에 잡아두었으니 얼마나 갑갑하겠어요. 그래서 제발 흘려보내 달라고 자꾸만 그런 시련의 상황을 만드는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는 시련의 상황을 충분히 느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연이어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죠. 그 모든 순간의 나를 알아차려봅니다. 그 모든 순간의 나를 연민합니다. 그러면 그 감정도, 그 감정과 함께 붙들린 기억들도 모두 사라져 버리죠. 내가 제대로 작업했다면 같은 시련은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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