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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y 18. 2022

26일 차

2022. 05. 18

Q. 당신의 지금 현재 건강에 대한 만족도는 어떠한가요?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었습니다. 몇 년. 꼭 필요한 일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최대한 만남을 피하고 줄였죠. 나는 늘 병든 닭 같았고, 나의 기초대사량은 천 칼로리는 되었을까요. 고작 그 정도 기초대사량을 가지고도 수년간 잘만 입어오던 옷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입니다. 나는 주말이면 집 밖을 나가는 게 무서웠습니다. 그 발걸음 몇 개 만으로도 다음 한 주를 기꺼이 살아낼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런 이유로 나는 끊임없이 안으로. 안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어쩌면 다소 어이없는 이유로 나는 밖으로. 밖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죠. 옷을 입기 위해서. 나는 매주 6일을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필라테스를 갔는데 몸이 내 맘대로 움직여지더라고요. 버티라면 버티고, 힘을 주라면 힘이 들어갑니다. 몸이 내 마음대로 된다는 것은 상당한 자유를 안겨줍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진실이 아닌 것을 위해 내 자유를 배신하고 있었습니다.


Q. 당신이 가장 건강했던(컨디션이 좋은 상태로) 시절로 돌아간다면 언제인가요? 그리고 지금이 그 시절의 건강함을 유지한다면 무엇을 시도해보고 싶은가요?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고등학생 때 가장 건강했습니다. 불곰 같았던 엄마와도 떨어져 지냈고, 하고 싶은 미술도 배울 수 있었고, 여러모로 매일매일이 버틴다기보다는 살아간다는 느낌. 그래요. 그때의 나는 버틴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견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만큼 살아보니 그때는 비교적 살아있던 것 같아요. 나는 하고 싶은 게 아주 많은 사람입니다.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 모든 것을 하며 살고 있을 겁니다. 내가 그토록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것은, 삶이 포기하고 싶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하고픈 것을 다 할 수 없어서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Q. 3개월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요?

나는 시골에 갈 것입니다. 아니 런던에 가야 할까요. 어디론가 나지막하고 하늘을 가리는 것이 없는 곳에 가고 싶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유랑하며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고, 글을 쓸 겁니다. 그림을 그릴 겁니다. 낯선 이와도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더라도 두려워하거나 수치스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무 그늘 아래서 잠을 청해보고, 지겹도록 바람에 부대끼는 가지들을 바라볼 것입니다. 지겹고 지겨워서 그것을 내 안으로 옮겨와, 이 작은 세상에서도 살아있게끔. 마음껏 그리워할 것입니다.


Q. 죽음을 알게 되었다면 무엇을 정리하고 싶은가요?

내가 가진 것들을 정리할 것입니다. 내 모든 것들을 어떻게 내어줄지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건네고,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거름이 되게 할 것입니다. 내가 줄 수 있는 이들에게 자유를 선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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