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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Jun 11. 2022

51일 차

2022. 06. 12

Q. 남들이 나를 소개할 때 주로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열심히 사는 애"라고 소개하곤 했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그리고 꽤 오랫동안 그 말이 너무 싫었습니다. '누군 열심히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아나? 지들도 열심히 살 수 있는데 열심히 살 필요 없어서 안 사는 거면서.'라는 저항이 있었지요. 열심히 산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나의 삶이 얼마나 구질구질한지, 얼마나 생존이 주가 된 목적 전도된 삶인지를 빗대어 말하는 것만 같이 들렸죠. 내가 당시의 내 삶을 무척이나 사랑했더라면, 그들은 나를 아마 다르게 소개했을 겁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열심히 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그것은 조금은 합리화, 조금은 자기 위로, 조금은 사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뭘 이 정도로는 해야 된다는 기본값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는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이 오래도록 나를 외롭게 했죠.

지금의 나는 어떻게 소개되고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만 소개되었지, 어떤 사람이라고 소개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말이 가장 듣고 싶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애, 그래서 함께 옆에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애" 정도가 좋겠습니다.


Q. 돈이나 시간 등 어떤 제약도 없다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앞에서도 상당히 여러 번 언급했던 것 같으니 패스하도록 하겠습니다.


Q. <예순 살이 되면>이라는 비틀스의 노래가 있습니다. 예순 살 당신의 생일에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고 싶습니까?

내 마음속에는 내가 이미 지어놓은 대저택이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늙은 정도가 다른 나의 모습도 여러 장면이 있지요. 나는 어느 시점부터는 언제나 위아래 모두 베이지색의 옷을 입고 있어요. 니트로 된, 폴라티, 치마, 그리고 카디건. 모두 같은 베이지색이에요. 머리는 중단발쯤 되어 아래로 단정하게 묶고, 동그란 안경에 줄이 달려있지요. 나는 사랑받는 할머니가 될 겁니다.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요. 존경을 넘어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어 있을 거예요. 나의 대저택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로 종종 북적입니다. 마당은 사이프러스 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마당을 향한 창이 동서남북 아주 크게 나있지요. 천장이 높은 집인데,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창문이어서, 마당을 그대로 볼 수 있어요. 창을 등지면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책장들이 있어요. 나는 그 방을 가장 사랑합니다. 창가에서 책을 읽고, 가운데 테이블에서는 연구를 하고 글을 쓰고 다양한 작업을 하죠. 또 다른 방에는 피아노, 기타, 유화를 그리는 이젤과 온갖 예술 도구들이 놓여있어요. 마당의 한편에는 흔들의자가 있어서, 나는 남편과 종종 그곳에 말없이 앉아서 바람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죠. 이 장면은 내가 70대일 가능성이 높아요.

예순 살의 나는 그 장면으로 향하는 어느 지점에 있겠죠. 여전히 조금은 치열하기도 하고, 지금보다는 훨씬 자유로워진 나일 겁니다. 나의 대저택에서 연구 모임이 진행되고 있어요. 마감을 앞둔 듯 상당히 분주해 보입니다. 부엌에서는 저녁 준비를 하느라 바쁘고요. 나는 남편과 연구모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저녁 파티를 할 예정입니다. 나는 꽤 저명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넘치게 사랑스럽지는 않아요. 조금 날카롭고,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있죠. 나를 사랑스러워하는 사람보다는, 나와 함께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Q. 직업을 선택할 때 당신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가?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보내는 시간이 최대한 덜 괴로우려면 어째야 하는가?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보내는 시간일지라도 최대한 보람 있으려면 어째야 하는가?

최소한의 재미와 최소한의 성취와 최소한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가?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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