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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Jun 14. 2022

54일 차

2022. 06. 15

Q. 그 능력은 언제 길러졌나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중세 암흑기 같았던 나의 10대 시절에 길러진 능력들입니다. 나는 사실상 인턴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사회에 내던져졌을 때부터, 그러니까 아르바이트를 포함해서요. 나는 그냥 일을 잘하는 애였습니다. 대부분의 아르바이트가 그렇지만 나 역시도 서비스 업종에 4년 정도 파트타임 근무를 했습니다. 나의 철칙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고객이 말하기 전에 행동하자. 두 번째는, 고객이 절대 같은 말을 두 번하게 하지 말자. 내가 직장인이 되어서도 이 Rule을 나도 모르게 지키고 있지만, 종종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조금 슬프기도 합니다.

기획력은, 그냥 타고난 천성인 것 같습니다. 글쎄요. 나는 혼자 컸기 때문에, 혼자서도 잘 노는 법을 개척해야만 했는데 뭐 그런 데서 길러진 것일지도요. 내 기억이 맞다면 네다섯 살 때, 나는 인형들을 줄 세워 앉혀놓고 학교놀이를 했습니다. 어디서 교탁이라는 것을 보고 와서는 그것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나는 당시 내 키에 2배는 되어 보이던 커다란 식탁의자를 눕혀놓고, 그것을 교탁으로 썼습니다. 그 위에 올라가는 책들은 다양했지요. 한 번은 발 지지대와 쿠션 사이에 들어가 보겠다고 시도했다가 낄 뻔하여 엄마에게 크게 혼난 적도 있지만요.ㅎㅎ


Q. 그 능력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자료가 있나요?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이란 게 있을까요?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면, 나의 이력과, 나의 작품들과,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만나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언제나 소개를 통해서 직장을 옮겨 다녔습니다. 함께 일했던 대부분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요. 그들이 나를 증명할 것입니다.


Q. 당신의 직업을 선택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나에게는 나의 선택을 도와줄 어른이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혼자 고민하고 혼자 선택하고, 그로 인한 책임도 오롯이 내 몫이었죠. 언젠가는 기꺼이 책임지는 법을 몰랐고, 언제부터는 책임을 지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책임질 일을 되도록 만들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편으로 삼고 있기도 하죠.

나는 기획이라거나 마케팅 같은 것의 개념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어쨌건 예대를 나왔고, 500% 우뇌형 인간이었으며, 상업적인 것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였으니까요. 앞에서 얘기한 부분도 같겠지만, 나는 나를 먹여 살려야만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삶은 풍요로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풍요로움으로 인해 나는 늘 가난했죠. 뭐. 지금도 아니라고 말하진 못하겠습니다. 그냥 창의적인 것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었어요. 더 정확히는 살긴 살아야겠는데, 더 지옥같이 살 것인가, 덜 지옥같이 살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머리로만 고민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잘 포장해서 말한다면 20대의 나의 화두를 <예술이냐, 상업이냐> 같은 것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지도요. 나는 그것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다음 Phase로 넘어온 것 같기도 합니다. 


Q.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지금 하는 그 직업을 택할 건가요?

나에게 꽤 맞는 직업이었을 수는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지금의 나의 기억과 경험과, 그러니까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을 가지고 다시 선택의 기로로 돌아간다면. 나는 예대를 다니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고 심리학을 전공했을 것 같지도 않지만요. 나는 훨씬 어릴 때부터 요가와 명상을 시작했을 겁니다. 더 많은 책을 읽었을 것이고, 전 세계의 영성가들을 만나러 다녔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쓰고 보니 이랬다간 지금쯤 점쟁이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문득 드네요. (농담입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닌 채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분명 같은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좋아서 혹은 그 선택지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그 경험을 필요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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