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치기

이만하면

by 그믐

툭. 하고 울어버리고 싶은 날이 있다.

모든 것에 화가 나는 날이 있다.

자신이 없어져서 걸음 하나 내딛기가 버거운 날이 있다.

삶이 너무너무 고단할 때, 고비처럼 견뎌내어야하는 괴로움이 있다.

길가다 싼 맛에 산 신발이 너무 예뻐, 몇년을 신어오다가 밑창이 너덜너덜 떨어진 것을 발견했을 때,

확대된 비참함이 밀려오는 순간이 있다.

주어진 상황을 배제하고 가장 하고 싶은 일에서만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삶에 열심히라고 해서, 모든 것에 열심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대상이 없는 원망은 갈 곳을 찾아 헤메이다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집에도 우는 아기 어르듯, 그 원망을 달래줄 사람은 없다.

어쩌면 내 원망은 우는 아기의 나이가 아니어서 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 집엔 우는 아기들만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이만하면' 이라는 잣대는 어떻게 사용해야 옳은 것인지가 요즘 최대의 관심사이고 또 고민인 것 같다.

그 자는 0과 '이만하면' 이라는 딱 두개의 눈금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불만족이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는 나는.

두 눈금 사이의 간격을 내 능력이나 너무 멀게 그려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혹은 현실이 내게 원하는 것이나, 나의 욕심이 내게 원하는 것보다 너무 좁게 그려놓아서 그 위로 차고 넘치는 결과물들을 잴 눈금이 없음에 회의감을 느끼고 조급한 것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 자는 고무로 만들어져서 나의 욕심에 따라 한없이 쭉쭉 늘어나고 있는지도.

그렇다면 나는 그 자 없이 내 인생을 평가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떤 자로 대체해야 나는 모든 걸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조언을 구할 데가 없다.


다시 한번 가장 본질적인 질문과 맞닿는다.

나는, 행복한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아니면 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병에 걸린 걸까.


201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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