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치기

못됐다

by 그믐

나는 못됐다. 누군가 나의 마음을 맛 보고 싶어했던 이는, 그 사실을 은폐하려 시럽같은 말로 코팅한 사탕을 내게 건넸는데, 내가 '여려서'라는 낮간지러운 단어를 선택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나는 쉽게 예민해진다. 그것은 비단 애인이나 가족은 물론, 아마 가까운 친구 혹은 동료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안받고 안주고, 줬으면 꼭 받고. 그것이 제일 기본적인 증상이었다. 내 사람이라고 하여 늘 끼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서로서로 피해만 주지않고 최소한의 관심과 배려로 수평된 저울을 유지하는것이 나의 촉수를 돋우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애인같은 경우에는 상황이 달랐다. 전자는 불가능했고 후자는 극대화되었다. 만일 상대가 내가 바라기전에 적당한 관심과 배려를 표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애인과 친구가 주는 '최소치'는 현저하게 다르지 않은가.

나는 못됐다. 아니 사실 이 넓고 험한 세상 살아가기라는게 맘처럼 쉽지가 않아서 못되져야했다. 이것은 나는 못됬다라고 추론 할 수 있는 첫번째 증거와도 근접한 연관성을 띄고 있는데, 바로 관심없는 사람과의 안받고 안주기 놀이이다. 어리고 여린맘엔 말한마디가 보슬비같고, 아픈배에 엄마 약손만 같아서 그저 헤실거리며 함께 웃고 맘 주기가 쉽상이었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대한 관심이란 대화 이전의 사람에서 풍기는 분위기에 70% 결정되어진다. 간혹 외관이 보여주는 최대한의 인간성과 인간미를 간파하기 전에 대화할 기회가 생긴다면, 십만분의 일정도로 조금의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일, 이차에 걸친 과정 동안에도 관심이 생기지 않은 이의, 밥 먹었나는 말 한마디는 가시방석보다 불편하다. 잘 지내느냐는 안부조차 불쾌하다. 왜 네가 그런걸 궁금해하는거야,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감히?

나는 못됐다. 보다는 좀 못났다. 가까운 친구한테는 짐이 되는 것 같고 갚아야할 빚이 되는 것 같아,그것이 너무 부담스러워 아무리 시급하거나 절박한 상황에도 말한마디 쉬운 부탁하나 하질 못한다. 나는 나의 감정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지만 도움이 필요할만큼의 안쓰러운 상황을 나누는 것엔 어설프다. 부모님 앞에서는 나이 몇이나 되었다고 어느새 센척하는 것이 몸에 가득 베어, 아파도 죽어가는 소리하나 못한다. 행여나 나의 꼬라지를 발견한 같이 사는 누군가의 걱정은 고마울 수도 있지만, 나를 '위해' 뭔갈 해주겠다는 의사는 고마움도 남길새 없이 우정마저 쥐구멍으로 숨어버리게 만든다. 주면 꼭 받아야하는, 즉 받으면 꼭 갚아야 하는 나의 철칙은, 피곤하고 황폐한 21세게 사회 현실에 맞게 재단되었으니까.

나는 못됐다. 그래서 나는 관심없는 이에게도, 관심있는 이에게도, 심지어 친하다 말할 수 있는 이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모든 것을 애인의 소관이라 정해버렸다. 그는 유일하게 내가 아플때 내게 와줄 수 있는 존재이며, 내가 와주길 바랄 수 있고 또 그래서 당연히 와줘야하는 존재이다. 그는 유일하게 모든 이에게 강하고 잘나고 혼자서도 잘해내는 김신혜가 한없이 무너져서 약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존재이며, 부가적인 짜증도, 투정도 볼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사람이다. 또한 그는 유일하게 나의 가장 예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고, 친구, 엄마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애교와 어리광을 볼 수 있는 존재이다. 나는 못되고, 못나고, 여리다니까. 아마도 여느 여자아이들보다도 더 심하고 지나칠테지만, 따라서 그 모든 역할을 수행하고 이 모든 특권을 누릴 그는, 그것들을 부담감이 아닌 감사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고난이도의 성숙함을 지녀야 한다는 것과, 김신혜를 더 웃게 만들어 주려는 소년같은 순수함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유일한 그의 적절한 태도는 투정을 어리광으로 만들기도, 추악한 가면을 쓰게도 한다.

나는 못됐다. 그래서 주제넘게 바라는 것도, 따지는 것도 참 많다.
나는 못됐다. 그래서 울게하는 것도, 속상하게하는 것도 참 많다.
나는 여리다. 그래서 행복하게 하는 것도, 웃게할 수 있는 것도 더 많다.
그리고 나는 아직 한참 어리다.


201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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