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치기

잔재 이야기

by 그믐

근 10년이 지나도록 흩날리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잔재들이 있다.
너나 할거없이 목소리를 높여대던 그들이 시간에 태워지고 서로를 떠나보내고 삶에 녹아들며 화석이 되거나,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더이상 소리높여 자기를 봐달라 아우성을 치거나, 듣거나 말거나로 본인의 이야기를 떠들어대지도 않는다.
묵묵하게 가장 숭고하고 위엄있는 표정으로 이제 그만 됬다며, 수고했다고 내게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눈을 감아버리는 듯하다.
남은 잔재라, 누가 있을까.
어떤 기억이, 어떤 감정이. 혹은 어떤 상처나 흉터가 남아있을까
정확히 10년이 되는 날에는 화석이 될 수 밖에 없던 몇몇만이 오랜 풍화를 견뎌낸 자연의 광활함만을 뽐내고 있겠지.

평생을 살아도 용서가 될 것 같지 않던 일들이, 죽어라 애써봐도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이제는 더이상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되거나 자연스레 인정하게 되었다. 그 필연의 우연함을.
글쎄.. 모르겠다.
괴로움에 목이 막혀와 불어버린 그들이 더 많은 씨앗이 되어 흩어져 민들레밭을 일구기도 했을테고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게된 기억들은, 혹은 원망들은 그런 내가 얄미워 저 멀리 어딘가로 날아가버렸을테다.
나는 생각에 잠식당하지 않는 법을 터득했고, 기억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워나갔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잔재와의 갈등은 아마도 그리움일 것이다.
살아보지 않은 날들에 대한 그리움.
만나본 적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내 인생 한부분에 존재했던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

영화 속 한 장면, 모든게 완벽해보이던 한 여자가 거칠게 욕을 뱉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을 기억한다.
내게도 그런 힘이 남아있는지
방치해두다 세상살이 무언가에 터지고 곪아 괴로울 고름이 남아있는지.
혹은 이제는 두터운 굳은살만이 내 맘을 전부 보호해주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더이상 쉽게 넘어지지도, 다치지도 않는 지금은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리던
가슴 속 그 뜨거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던
그 악몽같은 순간이
가끔은 그리운가보다.


201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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