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생각들과 소소한 감정에 내내 사로잡혀 있었지만 선뜻 글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았던 지난 몇 주.
크고 작은 의미들과 각기 다른 온도의 스침들을 감사해만 하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고
정의내리지 않는 법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배우겠다한지도 몇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내가 달성할 레벨이 아닌 것만 같은 괴리감에 기죽어 보낸 여름이었다.
벌써 낙엽이 하나둘씩 지기 시작하고 나무 위 파란잎들도 제가 살아가는 삶, 알맞은 시기에 바싹 타들어가기를 주저않는 가을이 왔다.
햇살은 아직 아쉬운듯 뜨거움을 내리 쬐려하지만 바람은 나와 그를 가로막고 차갑게 불어대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고 별들은 밤공기만큼 차갑게, 또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스물셋이 반이 지나도록 여전히 나는 의연해지는 일에 서투르다.
스물넷이 지나고 스물다섯이 되어가도록 지금보다 한결 익숙해지고 편안해보일 일들엔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내가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가올 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에 대한 걱정이 쓸모없게 느껴지겠지만.
방한 대비마냥 적절한 대비책을 세워놓지 않으면 그 차디찬 섬바람에 한없이 흔들릴지도 모르는 내 맘 걱정도 해야하고
(사실 대비책이라는 건 없다, 그저 어떻게 또 다른 8개월의 긴 겨울을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다짐뿐.)
귀차니즘의 만연으로 무기력한 내 몸이 어떻게 새학기를 활기찬척 시작할 것인가에대한 고민도 시작해야 할 때이다.
한 사람을 싫어할만한 이유가 되는 일들은 많았다.
반찬그릇 하나남은 소세지나 계란말이를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먼저 집어먹는다거나
예기치도 못한채 꿈에 나와 내게 모진 표정을 지으며 휑하게 나를 두고 가버린다는둥
혹은 잠자리에 들기전 목소리를 들려주기로 되어있던 사람의 부연설명없는 부재라거나
나를 나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 숨김으로서 내가 작아졌다는 느낌을 주었을때도 마찬가지었다.
한 사람을 좋아할만한 이유가 되는 일들도 많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거나 좋은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알게해주는 감정들도 많았다.
그 소소한 것들이 색이 되고 음악이 되고 따스함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나는 그 많은 것들을 접하고 공감하면서도 나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스물셋은 귀여운 것들이 많아지는 나이었다.
옆에 앉은 사람이 짝사랑에 빠져 안절부절하는 표정이나, 엄마가 어설프게 스마트폰 메신저로 보낸 답장도.
때에 맞지 않는 웃음소리나, 내게 맞춰보려는 옆사람의 걸음마저도.
스물셋은 여전히 모든 감정들과 생각들을 대처하는 일이 어려운 나이었다.
모든게 당황스럽고, 난해하고,
늘 오랜시간을 걸치거나 어렵사리 갈등을 풀게끔 해주었던 공식에 숫자만, 순서만 바뀐 문제임을 알면서도 아직은 확신이 서질 않고 답답하고 도망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그리고 때론 시간만이 그 모든걸 해결해 준다는 것을 견뎌내는일이 힘든.
어린 나이었다.
'살다'라는 단어를 자동사화 시키기 시작하는 나이었고,
내게 의미있는 사람의 눈 찌푸림하나에 마음이 약해지는 나이었고,
닿은 어깨에 맘이 떨려오는 나이었고,
밤길을 달리는 버스 창가에 흔들리는 불빛에도 울어버릴 수 있는 나이었고,
어제 내게 웃었던 사람이 보인 오늘의 무표정에 불안해 잠 못 이루는 나이었다.
그 작은 어려움을 견뎌내는 일이 얼마나 예쁜지 나는 아직 마음으로 알 수가 없다.
그 소소함을 힘들어 하는 일이 얼마나 정상적인지 알기엔 하루 24시간에 지친 내 모습이 꼴보기가 싫고,
막상 이 모든 사소함들로 부터 의연할 훗날의 내가 두렵고 불쌍해보이기도 한다.
예뻐보일 것 같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어버리는 일도,
그러다 또 언제 그랬냐는듯 별보고 달보고, 그렇게 이쁜 것들 보며 베시시 웃어보이는 일도,
(커피프린스의 이선균이 고은찬에게 했던 말 처럼)
제 앞길 헤치며 걸어가는 일도, 사람이 미워 속이 상하는 일도,
예뻐해주는 손길에 자기도 몰래 슬며시 마음을 놓아버리는 일도.
제 얼마나 이쁜줄을 모르고 울고 불고 땡깡부리는게 너무나도 정상적인 스물셋이다.
2012.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