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돌고래 스노우볼이 교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것은 산산조각이 나며 끈적한 푸른 색의 액체를 쏟아내었다. 돌고래도 돌고래 세상도 모두 메마른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이 내 손안에 들어온지 몇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나만의 공간에 한번 놓인 적이 없이, 내것으로 한번 온전히 지녀본 적도 없이 그렇게 전혀 관계없는 제3자에 의해 나동그라진 것이었다.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많은 상상과 기대에 부풀어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쥐어든 손의 온도는 따뜻할거라 믿었을터였다. 반짝거리며 작은 세상을 헤엄치는 자신을 보는 미소는 한없이 사랑스러울거라 믿었을터였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제 기대만큼의 행복과 고마움을 돌려받고 없던 일이 되었다.
이렇게 쉽게 깨어질거라 생각하지 못했고, 그렇게 쉽게 깨어져 실망스러웠다. 그 커다란 기대만큼이나 속이 상했고, 그 커다란 아쉬움만큼이나 쉽게.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너와 나는 그 돌고래 스노우볼처럼 짧은 소중함만을 나눈채, 연기같은 실망으로 사라져버렸다.
2.
소중한 순간을 위해 찬장에 고이 모셔둔 커피잔이 두개가 있었다. 단 한번도 쓴 적이 없었으며, 절호의 기회를 희망하는 마음에 손길을 뻗쳤다. 커피잔 세트는 제 몸을 감싸안았던 고운 포장지를 벗어버리고 테이블 위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는 마음이 실수가 되어 그만, 짝을 잃고 말았다.
바닥의 조각들을 쓸어내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은 하나의 커피잔과 두개의 받침이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의 받침은 예쁜 커피잔이 아닌, 크리스마스 향을 폴폴 풍기는 양초를 받치기 시작했고, 남은 하나의 커피잔세트는 외롭게 다시 찬장에 간직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하지 못했다. 너라는 세트의 잔은 나의 설렘이 실수가 되어 그렇게 나를 떠났고, 너라는 세트의 받침은, 다른 무언가를 위한 역할로 대체되었다.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깨져버린 커피잔을 회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끔씩 밀려오는 아쉬움이, 다시 너를 생각하게만들기도 하더라. 우리를 꺼내들 때의 설렘과 기대, 예뻤던 커피잔과 주워담을 수 없던 그 조각들을. 그리고 네가 깨져버린 나는, 사용의 설렘이 무기한 연기된채로 다시 찬장에 홀로 간직되었다.
3.
하드 커버의 책은 활짝 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나는 나의 편리를 위해 조금 힘을 주어 책을 폈고, 바인딩 부분을 감싸고 있던 낡은 책의 커버는 '쩌억'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나는 그 특별한 책의 아픈 부분을 테이프로 정성껏 감쌌고.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다시 회복되었다. 혹은, 예전보다 더 튼튼해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나의 실리를 위해 그런 선택을 했을 때, 네 마음은 그렇게 아프게 부러졌느냐. 너는 왜 우리의 이야기를, 그 관계를 감싸고 있는 커버였느냐. 왜 너는 그것을 지키고 있는 입장이었고, 나는 자꾸만 덮히는 그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해 너를 부러뜨릴 수도 있었던 사람이었느냐. 너는 정말 그 책과 같았느냐, 내가 그에게 그러했듯 나만의 테입으로 네 아픈 곳을 보듬어 줄 수 있었던 것이더냐. 그러면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예전처럼 혹은 그보다 더 견고해졌을테였느냐.
2013.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