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치기

가위

by 그믐

유독 바깥소리가 크게 들린다. 창문 앞으로 비행기가 날아가고있는 것 같고 방안에서 파티가 열린것 같았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움직이는 소리마저 느껴지는듯 했다. 숨이 꽉 막혀서 눈을 뜨자마자 잠들고싶었던 난, 꾹꾹 눌러담은 현실에 다시 한번 체를 하고 말았다. 어쩌면 나는 북받쳐오르는 혼란스러움에 오해를 살만한 말들을 함부로 했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어떤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 40분을 견뎌내야할지 배려하지 못한 채. 빗소리가 이토록 크게들린다면 좋을 거란 생각을 한다. 어느날부터 외로울때마다 투닥투닥 창문을 치는 빗방울과 그 소리를 기다렸던것같다. 그러면 언제나처럼 어김없이 나의 밤 한구석 창가에 와닿아 촉촉하게 마음을 적셔주었었는데. 늘 아버지같았던 나의 어머니가 그립다. 두서없이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쓰는 이 말들을 모두 연결시켜놓아야할지. 줄을 바꿔놔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그 모든것들을 떨어뜨리면 더 혼란스럽거나, 너무 적적해 보일 것 같다.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쓰는 '애'는 독이며 참으려 쓰는 '애'는 득이다. 고마운이에게 답장을 쓰는 일이 이토록 어렵게 느껴지는것은 왜인지. 그저 고맙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나의 회신이 너무 초라해보이는게 염려되는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조언이란 언젠가 한번쯤 내가 생각했던 것이라는 경솔함과 너의 말대로 안하는게아니라 못하는것이라는 합리화, 그리고 나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그런 조언으로 표현하지마. 라는 세가지의 터무니없이 삐뚤어진, 하지만 사실일지도 모르는 갈등들이 피어오른다. 도움이 받고 싶은건지, 힘을 얻고 싶은건지. 아마도 나는 힘을 얻고자했고 누군가는 내게 도움을 주려고한 듯 하다. 일치하지 못하는 공급과 수요는 오해와 갈등을 낳고 마음과 감정에 균열을 만든다. 갈라터진 틈사이로 피가나고 고름이 엉겨붙겠지. 가시를 세운 나와, 나를 품으려다 다친 사람이 어떻게 이 건조한 쓰라림을 이겨내야할지 아직 미지수다. 침대 옆에 놓인 노란색 종이가방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마치 오랜 시간처럼 저기에 있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들지 않았지만 그가 선사하는 무게는 체한 가슴을 누르고 쓸어내려 토하게만든다. 뒤섞이는 고마움과, 미안함에. 다시금 정제수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날까지의 마음의 짐과 같을 터였다. 죽어버리자 살아버리자 했던 순간을 함께했던 이와의 끈질긴 연결고리는, 누군가 하나만 뒤쳐저있어도 손가락조차 까딱할 수 없는 발악을 하게 만든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치고 살아보려애써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빚이 나를 엮어두어 일어서지도 나아가게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마도 나를 자꾸 울리는 이유는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부같은 이가 나로인해 힘들어한다, 언제이고 힘들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오죽 지쳤으면 내게 그럴까. 한결같은 혹독함에도 밝은척, 따뜻한척 해보이던 사람이 얼마나 질려가고있으면 내게 그럴까 싶은 것이다. 그래서 웃지도 즐겁지도 못하는 나는 우는것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위에 눌린채로 살아가는 것 같다. 소리를 지르고 깨어나려 최선을 다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나의 소리는, 상황은, 몸짓은 들리지가 않고 유독 크게 들리는 세상의 소리에, 다른 이들의 소리에 끝없는 외로움의 공포로 빨려들어가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언젠가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 그때까지 내가 다시 웃고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할 힘이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나는 그 가위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벗어나려하면 안된다고 망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손을 이따금씩 꼬옥 잡아주는 그가 그저 너무 고마울 뿐이다.


2011.06.05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