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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Oct 02. 2021

가을 6

나에게 편지를 쓴다.


나에게 편지를 씁니다. 존중의 마음을 담아 존댓말로 말입니다. 한 사흘 추적추적 비가 내리더니 오늘 낮에는 등짝으로 땀이 납니다. 여름옷 반팔 티셔츠를 장롱 서랍에 넣어놨으니 꺼내서 입으면 또 정리를 해야 합니다. 입던 긴팔 남방을 팔소매 둘둘 걷어올려 그냥 입습니다. 귀찮다는 말이지요. 내 몸치장하고 꾸미기도 힘에 겹습니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에  우수수 떨어진 덜 여문 은행알을 봐도 쓸쓸하고 아침저녁으로 바람결이 다른 찬 기운에도 몹시 추위를 탑니다. 높아진 하늘에 구름이 멋지건만 그다지 감흥이 없습니다.


끝물인 네 잎 클로버가 보입니다. 수북한 토끼풀 속을  눈에 힘을 주고 찾다 보면 기가 막히게 한두 개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맛에 낙동강변을 걸으며 힘을 냈습니다. 여름 내내 국어사전 책갈피에 네 잎 클로버를 끼워두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깊어지는 가을은 말려들어간 어깨를 더 움츠리게 합니다.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야 하는 남편도 때때로 야속합니다. 괜스레 서운했던 감정들을 가을이 오면 같이 데리고 오나 봅니다. 생각나는 데로 남편에게 따져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찌꺼기 남아있습니다. 마음과 몸을 옹그리니 키가 2센티 줄었습니다. 나이 들어 작아진 할머니와 엄마가 이해되어 머리를 끄덕끄덕해봅니다.



일주일 시름시름하다가 가을 열차를 가슴 역에서 보냅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며느리에게 여름에 흰색 바지 두벌을 사줬더니 교복처럼 입습니다. 추석에 만나니 흰색 바지는 여름에 어울립니다.  같은 바지를 검은색으로 하나 주문하고, 세 살 손주에게는 가을 남자 냄새나는 베이지색 코르덴 바지와 티셔츠를 보냅니다. 입은 것을 상상하며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이렇게 다시 일어납니다.

3개월 남은 올해도 잘 살았습니다. 애썼지요. 힘들지 않았던 지난 시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큰 밤을 내 입에 넣기는 아까워 한 되에 오천 원 하는 작고 통통한 산밤을 두 되  사서 실 컷 까먹습니다. 밤이 잘아서 까느라 손이 많이 가지만 가을이 주는 선물입니다. 쌀쌀하기 전에 얼른 두 되 더 사야겠습니다. 밤은 농약을 치지 못해 벌레가 많이 생기니 밤에 소금을 뿌려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면  벌레가 안 생긴다고 밤을 파시는 아주머니는 강조하며 큰 목소리로 알려줍니다. 잠시 밤을 들여다보니 밤 속에 들어있을 밤벌레에게 미안해집니다. 소금까지 뿌리고 싶지 않습니다. 몇 개가 되더라도  밤벌레에게 양보하고  나머지 먹는 것이 속 편하겠습니다.



2021년 10월 02일 오후 4시입니다.

지난여름이 아쉬운지, 가는 세월이 아까운지 올여름에 입었던 민소매 티셔츠를 다시 입고 싶습니다.  지난 시간들은 아쉽고 아깝습니다. 마침 오늘 장날입니다. 밤 사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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