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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Dec 31. 2019

부모 형제 자식 5

서러움은 별것 아닌 것에서 생긴다

   


 너랑 같은 걸로. 그냥 아무거나. 두리 뭉실이 잘 안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힘들게 살 수도 있지만  타인에게 "왜 저래?"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로 받은 상처는 뼛속 깊숙이 파고들어 얼마나 저리고 아픈지 알기 때문이다.


 시댁은 걸쭉한 육개장을 좋아한다. 뻘건 국물에 기름이 둥둥 떠있고, 생선 냄새가 요란한 고등어에 기름 가득한 갈비찜이 결혼하고 처음 만난 상차림이다. 싫어해요 소리도 못하고 그렇다고 뭐 좋아하냐? 묻는 사람도 없었다. 당신들 좋아하는 음식 차려 놓고 먹을 뿐이다. 내 엄마는 깔끔한 북엇국과 미역국도 고기보다는 멸치 맛국물을 내어 맑게 끓여 주셨고, 생선 구웠어요 하고 소문내는 고등어보다는 조기와 꽁치를 바짝 졸여서 칼칼하게 먹을 수 있게 해 주셨다. 시댁과 다른 모습에 먹는 것까지 힘들게 하면서 꿀 먹은 벙어리처,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행동했다. 밥보다는 떡을 좋아하니 이것도 밉상이었다. 밥 밥 밥 노래를 불러대는 시댁과는 다르다는 종소리가 크게  땡땡 울렸다. 사람들은 같이 밥을 먹으면서 없던 정도 생기고 정분도 난다고 한다. 그놈에 고기 때문에 정분이 생길 수가 없었다. 설거지도 이렇다. 따뜻한 그릇에 담긴 고기들은 식으면서  허옇게 되어 그릇 가장자리에 끈적하게 묻어 잘 닦이지도 않는다. 작은 싱크대에 그냥 밀어 넣는 형님의 손길이 야속했다. 휴지라도 좀 닦도 넣으시지 어찌 이걸 닦으라고 넣는지 본인도 설거지를 해봤으면서 말이다.  밥공기에 국그릇, 종지들까지 순식간에 한가득이 되어 숨이 턱에까지 차올랐다. 고무장갑을 끼고 싱크대 밑을 바라보며 친정 엄마가 생각나서 뭘 닦는지도 모르고 닦았다. 눈물 날 것도 천지다 싶지만 서러움은 별  것 아닌 것에서 생긴다.  세월이 흘러 50살이 넘어선가."형님  한꺼번에 좀 넣지 마세요"라고 했다. 베란다에 있던 국을 끓인 들통까지 싱크에 올라와 나를 질리게 했던 날이 기억난다. 이렇듯 시댁 식구들을 만나면 싫어하는 그놈에 고기를 열심히 굽고 새 빠지게 설거지를 해야 했다. 먹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었다. 가만히 잡수시기나 하면 좋겠건만  어떻게 고기를 안 먹어? 이상해. 모두 모인 곳에서 뻘쭘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했던 모양이다. 체력이 저질인 나는 힘이 들면  밥맛이 없다. 밥을 안 먹으면 밥 먹는 꼴을 못 봤다고 하면서  손아래 시누이는 들으라는 식으로 한 소리까지 한다. 버르장머리가 없었지만  군소리 한마디 못했다. 시댁이었다. 잘 지내야 했고 입바른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를 위해 떡 한 조각 준비해주는 사람도 없으면서 말이다. 좋아하는 음식 맛있게들 드시고 남의 얘기는 하지 마시길 바랄 뿐이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 새해에는 본인과 다른 모습인 이들에게 아무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참고 듣는 이들은 상처 받고 평생 가슴에 묻으니 더욱 들으라는 식에 못된 말은 하지 마시기를.  말이든 행동이든 업을 쌓는 일이기에.


2019년 12월 31일 세상에나 2019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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