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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Feb 09. 2020

삶 12

호사로운 것




  머릿속에 꽉 차 있던 생각들은 '건강'이라는 단어로 바뀌어서 내동댕이 쳐지고 

이마 한복판에도  '건강하자'가 새겨졌다. 씻는 것도 먹는 것도 규칙 없이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 그리고 글을 쓰는 것들에게 붙어있었던  작은 근육마저도 어디론가 사라진 듯 몰랑몰랑해졌다.


쉰다는 핑계로 드라마를 실컷 본다. 하얗게 만들어진 머릿속 도화지에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들로 심장이 쿵쿵거리며 가슴속으로 쏙쏙 파고든다.


쓰디쓰고 쓸쓸한 인생의 밤들이 많아서 달달한 밤이 그리워 자신이 주인인 포장마차 가게 이름을 '단밤'이라 지었다는 드라마 주인공 말에 나에게도 있었던 쓰디쓴 밤들이 떠올라 과거로 휘리릭 날아갔다 온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호사를 누리고 있다.






37년 전 1983년 1월 29일. 무엇이 그리 좋아서 봄도 아닌  매섭게 추운 겨울날 결혼을 했을까!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는 지독하게 현실적이어서 결혼기념일에도 한 다발에 꽃은 사치였고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살이 찐다고 케이크는 사지 않으며 한송이의 꽃이 심플하고 예쁘다.

돈이 들지 않는 한 장의 손 편지가 좋았고 문자화 된 편지 속 따뜻한 감정들은 꽃다발과 케이크보다도 

켜켜이 쌓여가는 미움과 분노의 감정들을 잠깐씩 잠재우는 묘약이었다.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히트맨"영화를 보며 저녁도 때웠다.

리키 마틴 오징어와 캐러멜 팝콘을 한 통씩  끌어안으니 영화 관람료보다 비싼 저녁을 먹었다. 

저녁도 차리지 않고 영화도 보면서 좋아하는 오징어를 씹으니 이것 또한 나에게는 호사로운 짓이다.



평범한 일상은 욕심을 빼고 나면 모든 것이 호사로운 것이 된다.



2020년 2월 10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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