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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Kim Nov 13. 2022

가을 산책

계절의 구분이 없는 나라에 사는 동안에는 시간의 흐름에 둔감해짐을 느꼈었다. 그런데 4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는 추운 겨울을 지나 꽃이 피고, 매미가 울고, 뙤약볕이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구다, 어느 날 갑자기 찬바람이 불더니, 풍성한 나뭇잎이 노랗게 빨갛게 물들고, 며칠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떨어진 낙엽이 온 마을을 나뒹구니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오늘 비와 함께 떠나가고 있는 올 한 해를 바라보며 애도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 여든 이후의 삶이 존재할지, 존재한다 해도 충만한 삶을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러니 비명횡사하는  없이   없이 산다 해도 내게 남은 가을은 고작 서른아홉 . 그러니 아쉬움이 남지 않게 열심히 살자고 가을 길을 걸으며  자신에게 말했다.


스무 살의 나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고, 세상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싶었다. 서른의 나는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도저히 불가능하다 싶은 영역까지 넓히고 싶었다. 그런데 마흔의 나는 건강하게 사는 것 외에 다른 욕망이 없다. 그러면서도 늙어가는 나의 육신과 내리막길만 남아있는 것만 같은 사회인으로서의 나를 음미하노라면 두려움이 스며든다. 그래서 올해도 분주하게 살았던 것 같다. 욕망이 아닌 두려움 때문에.


 이리 살아도 한 인생 저리 살아도 한 인생인 것을, 때로는 허망한 것들을 쫓느라 때로는 두려움에 쫓기느라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를 다그쳤다.


불금이라며 신나 하다 조금 어물거리다 보면 어느새 일요일 밤의 막다른 길에 다다르는 것처럼, 그렇게 분주하게 살다가는 느닷없이 그 끝에 이르게 될 것이라 협박도 했다.


그러고 나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서른의 삶도 마흔의 삶도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으니, 남겨진 쉰, 예순, 일흔의 삶도 크게 나쁘지 않을 거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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