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밍의 질주를 멈출 수는 없을까요

by 바보

“저라고 우리 아이를 달달 볶고 싶겠습니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맞아요, 어느 부모인들 그러고 싶겠습니까. 공부하라고 다그치고, 안쓰러워 한숨 쉬고, 미안한 마음에 간식을 챙겨주고, 그래도 불안해서 다시 다그치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압니다. 아이를 여유롭고 자유롭게 키우는 것이 옳다는 것을요. 책도 읽고, 햇살도 쬐고, 친구들과 어울려 마음껏 놀면서, 자기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요. 그런데 문득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키워서 경쟁에서 밀리면 어쩌지요?”

혹시나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원하는 직업을 얻지 못하며, 제 밥벌이도 못하게 된다면요. 혹시 사회에서 뒤처졌다는 낙인이 아이의 삶을 짓누르게 된다면, 부모로서 그 불안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순진한 소리 그만하자"고요. 꽃향기 맡으며, 따뜻한 햇살 속에 여유롭게 걸어가고 싶지만, 옆에서 누군가 뛰기 시작하면, 나 역시 뛰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더 빨리 뛰는 이가 있으면, 더더 빨리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요, 그 길의 끝이 혹시 낭떠러지라면 어떨까요?

우리 모두 레밍처럼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누군가는 이미 절벽 아래로 떨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무너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무기력, 불안, 분노, 체념. 성적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아이를 살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화두는 어쩌면 이 문장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부도, 진학도, 취업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앞서야 할 것은 아이의 마음입니다. 살아 있는 마음,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는 잠시 멈춰야 합니다. 오늘부터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대안이 필요합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실현 가능한, 작지만 의미 있는 대안 말입니다.


첫째, 경쟁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남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경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성적이 아니라 태도에, 점수가 아니라 배움의 깊이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적표보다 아이의 눈빛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모가 먼저 되새겨야 합니다.


둘째, 아이의 시간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놀이의 시간, 쉼의 시간, 사색의 시간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공부를 하지 않는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성장의 시간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매일 10분이라도 책상 앞이 아닌 햇살 아래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셋째, 뜻을 함께하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뜻이 맞는 부모들이 함께 모여 ‘조금 느리게 가는 용기’를 공유해야 합니다. 경쟁을 벗어나는 선택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지만, 함께라면 가능해집니다. 그런 부모들이 있을 때, 학교와 교사도 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달리는 속도에 익숙해져 목적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아이가 도달하게 될 그 ‘어딘가’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자문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결국,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아이는 지금,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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