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절차의 교실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선생님, 저 아이가 저를 때렸어요.”
2005년, 제가 처음 교단에 섰을 무렵 이런 말은 교사의 너그러운 시선과 따뜻한 중재 속에서 곧장 화해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교실은 아이들이 서툴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고,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교사는 그 배움의 과정을 이끄는 조력자였습니다.
그러나 20여 년이 흐른 지금, 학교는 더 이상 그때의 그곳이 아닙니다.
지금의 학교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입니다. 아이들 사이의 작은 다툼은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신고 절차에 들어가고, 교사의 교육적 지도는 ‘아동학대’의 혐의를 받게 됩니다. 교육의 언어는 점차 사라지고, 법의 논리와 절차가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교실을 차갑게 만들 뿐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배우고 성찰하는 소중한 기회를 빼앗고 있습니다. 잘못한 행동에 대해 교육적으로 마주하고, 그로 인해 성장하는 경험 대신,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법적으로 문제 될까?’라는 계산이 우선되는 태도만 남게 됩니다.
학생 인권 보호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회적 진보입니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인권을 존중하는 태도는 교육의 본질적인 가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하나가 계속해서 침해당한다면, 우리는 결국 교육이라는 배의 균형을 잃게 됩니다.
오늘날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반면,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하고 지지해 줄 제도적 안전망은 상대적으로 매우 취약합니다. 이로 인해 교사들은 ‘문제 될까 봐’ 교육적 개입을 꺼리게 되고,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보다는 ‘방어’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책임을 배우고 성숙해 가는 과정을 누군가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는 아이들이 책임의 무게를 실제로 경험하고 내면화할 기회를 점점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교사는 지금 법률의 회색지대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갈등 상황에 개입했다가 자칫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교사를 주저하게 만듭니다.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조차도 '잘못을 깨닫는 경험'보다는 '내게 어떤 처벌이 돌아올까'라는 걱정에 집중하게 됩니다.
예컨대, 교사에 대한 폭언이나 신체적 폭력이 발생해도, 실제 조치는 대부분 ‘사과문 작성’이나 ‘봉사활동’에 그칩니다. 이는 해당 학생에게도, 그 상황을 지켜본 다른 학생들에게도 “심각한 일이 아니다”라는 왜곡된 메시지를 남깁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반성하기는커녕 처벌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이 정도로는 별문제 없다'는 그릇된 자신감을 얻게 되며, 이는 또 다른 폭언과 폭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습니다.
여기에는 학교 본연의 한계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학교는 본질적으로 '교육기관'이지 '사법기관'이 아닙니다. 따라서 학교 폭력이나 교권 침해 사안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전문적인 수사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법기관과 같은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처벌을 내릴 법적 권한도 없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인해 학교가 할 수 있는 조치라는 것은 대부분 '특별 교육 이수'나 '심리 상담', 또는 '성찰 보고서' 작성(이전의 '반성문'이라는 명칭조차 학생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변화한 실정입니다) 등 교육적 개입의 범주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사나 교육행정 실무자들이 관련 사안을 교육적으로 판단하고 처리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사법적 전문성과 판단 기준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결국, 이는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진정한 책임감을 내면화할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한 기업에서 직원이 상사나 동료에게 폭언, 폭행, 성희롱을 했다면, 단순 '경고'로 끝날까요? '성찰 보고서' 한 장 작성하면 없던 일로 쳐줄까요? 아닙니다.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야 할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조차 자신의 행동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들이 마주할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비록 '촉법소년'이라는 보호를 받을지라도, 아이들은 언젠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학교는 바로 그 책임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첫 사회입니다. 지금 학교가 아이들에게 '내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와 충돌하고 혼란을 겪게 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반면, 교사는 침해 사안 발생 즉시 법적 방어에 나서야 하고, 정신적으로 소진된 상태로 다시 아이들 앞에 서야 합니다. 얼마 전 옆반 선생님은 6학년 남학생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수치스러운 성희롱을 당했지만 아직은 미숙한 어린이라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구두 사과하는 것으로 종결되었습니다. 학생이 이 사건을 통해 본인의 언행에 대한 책임감을 배울 수 있었을지는 무척 의문인 반면, 선생님은 본인을 성희롱한 학생을 데리고 남은 학기를 힘겹게 견뎌내야 함은 분명합니다. 책임과 회복의 무게가 결코 같지 않은 이 불균형은 교사들을 더욱 지치게 만듭니다. 이러한 피로감과 좌절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옳고 필요한 지도를 소신껏 펼치지 못하게 만드는 심각한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교사에게 '가르칠 권리'가 법에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학생에게는 ‘배울 권리’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사에게도 독립적인 주체로서 '가르칠 권리'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법 어디에서도 교사의 ‘가르칠 권리’를 독립된 권리로 명문화하고 있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직업이든 자신의 본질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권한'이 명확히 보장되어야 합니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권한, 경찰이 범죄를 수사할 권한처럼, 교사에게는 '가르칠 권리'가 바로 그러한 본질적인 권한입니다. 현행 법 체계는 교사의 교육적 권한을 학생 학습권을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 결과, 수업이 방해를 받거나 교육활동이 침해당해도 교사는 자신의 본질적인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건축가가 설계도를 그릴 권한이 없거나, 의사가 진료할 권한이 수시로 침해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르칠 권리'가 명확히 보장될 때, 교사는 더욱 소신 있게 교육에 임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궁극적으로는 책임감 있는 성장을 유도하는 든든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무너진 균형을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이는 단순히 교사만을 위한 과제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따뜻한 교실에서 제대로 배우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방법을 익히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입니다. 책임감 있는 다음 세대를 키워내기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1. '가르칠 권리'의 명확한 선언을 통한 책임 교육의 기반 마련 교사의 '가르칠 권리'를 학생의 학습권과 대등한 기본권으로 법적으로 명확히 선언하고 보장해야 합니다. 이는 교사가 교육의 주체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교육활동에 전념하며, 아이들에게 사회적 책임감을 가르치는 데 필요한 권위와 자율성을 확보하는 굳건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2. 학교폭력이나 교권침해 사안이 발생했을 때, 빠르고 실효성 있는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고, 교사가 법적 방어에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특히 학교 자체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중대 사안에 대해 공정성과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 수위 이상의 학교폭력 및 교권침해 사안을 대상으로 형사처벌 여부와 사법기관 이관을 심의하는 ‘가칭: 학교폭력 형사 이관 판단위원회’를 교육지원청 등 교육기관 단위에 설치·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복적인 신체폭력, 성폭력, 교사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나 협박 등은 명백한 범죄 행위로써, 단순한 학교 차원의 교육적 개입만으로는 해결이 어렵습니다. 이러한 중대 사안에 대해 법률가, 학교전담경찰관, 청소년 심리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판단해, 사법기관에 이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교사는 형사적 판단의 부담에서 벗어나 교육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고, 학생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인지하고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경험하게 됩니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막연한 관용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책임을 배우고 성숙할 기회를 빼앗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책임 교육은 단순한 훈육을 넘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교육 과정이어야 합니다.
3. 교육적 회복 중심의 접근 강화 갈등을 법적 처벌로만 접근하는 대신, 교육적 회복과 성찰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과 현장 자율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징벌적 처벌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며, 스스로 책임을 느끼고 변화하게 하는 것입니다. 법적 절차가 가져오는 차가움과 경직성은 때로 문제 해결의 본질보다 '책임 전가'나 '승패'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대신, 피해 학생의 상처를 진정으로 치유하고 가해 학생에게는 자신의 행동이 초래한 결과를 깨닫고 진심으로 반성하게 하는 회복적 교육 과정을 강화해야 합니다. 교사가 이러한 교육적 판단을 내리고 실행할 수 있는 현장 자율성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학교는 단순한 법 집행 기관이 아닌, 진정한 삶의 터전이자 성장의 배움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갈등을 해결하고 책임감을 배우는 진정한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과 교권침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나아가 건강한 학교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합니다. 일정 수위 이상의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학교폭력 형사 이관 판단위원회'와 같은 독립적인 기구를 통해 신속하고 공정한 사법기관 이관을 추진하여, 가해 학생에게 명확한 법적 책임을 묻고 교사의 교육적 역할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처벌을 넘어,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명확한 결과를 인지하고 책임감을 배우는 중요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일정 수위 이하의 사안들에 대해서는 학교 현장의 교육적 자율성을 바탕으로 회복적 정의에 기반한 교육적 접근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징벌적 처벌만을 강조하기보다는, 갈등을 통해 학생들이 배우고 성장하며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변화할 수 있도록 피해 학생의 치유와 가해 학생의 성찰을 돕는 다양한 회복적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이러한 투트랙 접근 방식은 학교가 단순히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폭력 없는 안전한 배움터이자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며 책임감 있는 미래 시민으로 성장하는 진정한 교육의 장으로 거듭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