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랑종>
<곡성>이 불행의 무작위성에 대해 말했다면, <랑종>이 말하고 있는 건 불행의 기원이다. 그리고 그 기원이라는 것이 실은 불행의 객체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겨울 정도로 잔혹한 서사를 통해 서술하고 있다.
그러니까 <랑종>은, <곡성>의 담론을 보다 근원적으로 해부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객체는 왜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해야 했나.
조상의 악행? 모친의 탈선? 가족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서까지 악의 근원을 탐구하면, 그래 그것 때문에 객체가 끔찍한 일을 당했군-하고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할까. 객체 자신의 것도 아닌 악행을, 단지 그 핏줄과 영혼을 물려받았단 이유로 불행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가.
그래서 실은, <랑종>에서 말하는 악의 기원이란 것이 그저 신들의 싸움 혹은 놀이에 불과하다는 점은 허무함을 넘어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이 때문에 단순한 징벌적 심판으로 비춰진 <랑종>의 서사는 사실 오컬트적 환상을 덧씌운 비극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다보면 온갖 악운에 사지를 내줘야 하는 순간이 분명 찾아온다. 왜 하필 나여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토르소마냥 박제되어야 하는지-하는 그런 순간 말이다. 잘못의 근원을 찾자면, 무언가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맞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나아가 이미 그러한 행위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 이유 따윈 없는 잔혹한 학살극 혹은 신랄한 놀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허무를 강요하는 이러한 서사 속에서도 일견 희망적인 부분이란, 악의 무작위성과 대비되는 선의 이미지다. 대개 선이라 말하는 것은 작위적인 의지의 표명이다.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구태여 행함으로써 개인의 의지와 가치관을 투영해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닥친 온갖 부정을 별 수 없이 감내해야 만 하는 인간이, 선을 행하여 그 수동성을 비로소 떨쳐낸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불온하고 악한 것은 언제나 선한 것보다 늘 가까이에 있어서, 조금만 눈을 돌려도, 아니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열병이 들끓듯 증오와 불신이 터져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언제고 당신의 의지를 관철해 나가길 바란다. 의지마저 박탈 당한다면-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란, 단 하나도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