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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공 김낙범 Nov 22. 2024

무거워지는 책임감

어깨가 축 늘어진 중년

중년이 되면 직위가 올라가고 직위에 해당하는 책임과 의무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더구나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은 마치 벼랑 끝에 서있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중년의 삶은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인생의 여정을 경험할 수 있다. 


공원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는 중년이 있다. 호수에는 어미 오리가 새끼에게 자맥질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지만 그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옆에는 무거운 가방이 놓여 있다. 

'저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문득 호기심이 발동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호기심이 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공원 의자에 홀로 쓸쓸히 앉아 있는 중년의 가방에는 일거리가 가득 들어있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에서 미처 하지 못한 일을 집에 가지고 가서 밤새 작성해야 할지 모른다. 새벽에 겨우 눈을 붙이고 아침에 출근 전쟁을 치르다시피 하며 직장에 출근하면 역시 책상 위에 많은 서류뭉치가 쌓여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일처리를 해도 여전히 쌓이는 일거리를 모두 처리하기는 힘들다. 야근을 하다가 피곤해지면 어쩔 수 없이 서류 가방에 일거리를 구겨 집어넣는다. 마음이 편할리 없다. 일거리를 가지고 오는 가장을 반겨줄 가족은 없기 때문이다. 


중년이 되어 직위가 올라가면 직접적인 실무보다는 책임감이 늘어난다. 직원들이 작성해 오는 서류를 검토하고 결재하기도 바쁘다. 또한 간부 회의를 매일 하는 직장에서는 회의로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다. 

회의는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필수 업무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업무에 시달리는 간부들에게 회의란 불필요한 시간 낭비로 여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로 상명하달의 지시사항이나 듣고 회의를 주관하는 대표의 잔소리를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생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에서는 회의 시간을 가능한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편이다. 회의도 온라인으로 간단하게 하고 지시사항은 메일이나 공지사항을 열람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라인이 활성화되기 전인 내 시절에는 회의실에 가야 한다. 하루에 두서너 번씩 회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회의 시간 내내 머릿속에는 책상 위에 놓인 일거리와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 걱정이 가득하다. 일거리를 일과 시간 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야근을 해야 하고 일거리를 집에 가져가서 밤새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날이면 업무를 하지 못하므로 야근을 해야 한다. 야근을 하다가 지치면 서류 가방에 일거리를 집어넣고 퇴근을 한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중년의 퇴근. 나는 그러한 일이 허다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 고역을 참아야 한다. 고정된 월급마저 없으면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가장으로서 가족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기 때문이다. 푼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이라도 해야 하고 하다 못해 붕어빵 장사라도 해야 할 것이다. 이것도 아이들에게 못할 짓이다. 


중년에 직위가 높아지면서 책임감도 무거워지고 더불어 가방의 무게도 무거워진다. 공원에 앉아서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는 중년은 가방을 호수에 집어던지고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해 보기도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기에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만다. 그것을 바라보는 그에게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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