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탁류청(去濁留淸)
비워야 채워진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음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문득, 집안을 둘러보니 불필요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옷장은 입지 않는 옷들로 넘쳐났고, 서랍 속 물건들은 존재조차 잊고 있었으며, 책장은 읽지 않은 책들로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모아뒀을까?”라는 질문 끝에, 의미 없는 관계와 습관, 걱정들까지도 제 삶을 무겁게 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거탁류청(去濁留淸), 탁한 것을 버리고 맑은 것만 남긴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이 말은 진정한 풍요란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를 비워내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깊이 느꼈습니다.
비어있는 마음
차분하게 삶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옷장을 살펴보며 지난 1년간 입지 않은 옷은 기부 함에 넣었습니다.
책장에 있던 책들을 정리하여 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 내가 보지 않는 책들은 누군가에게 삶의 양식이 되어줄 겁니다. 그리고 거실, 주방의 물건들도 하나하나 손에 쥐고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가”를 자문하며 정리했습니다.
며칠 동안 불필요한 물건을 내보낸 후, 집은 물론 마음까지 넓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건이 줄자 청소가 쉬워지고, 찾는 것도 수월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관계 정리
물건을 정리한 후, 더 어려운 정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관계’였습니다. 스마트폰 연락처를 열어보니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있었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연락처를 정리하지 못했던 이유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두려움으로 유지되는 관계가 과연 진정한 관계 일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하나씩 정리해 나갔습니다.
에너지를 빼앗는 모임은 그만두고, 의미 없는 약속은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처음엔 죄책감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진정한 친구들은 여전히 곁에 있었고, 덜 자주 만나도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생긴 여유 시간에는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더 자주, 더 따뜻하게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관계도 결국, 정리가 필요합니다. 진심이 남고, 숫자는 사라질 때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맑은 삶의 아름다움
거탁류청(去濁留淸)을 실천하며 살아온 시간 속에서, 삶은 점점 단순해졌습니다. 그러나 단순함은 결코 단조로움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삶은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불필요한 것들이 사라지자,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의미 있는 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기쁨들. 마치 탁한 물이 가라앉으며 맑은 물이 드러나듯, 삶의 본질이 선명해졌습니다.
풍요란 많이 가지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적게 가지면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삶에서 과감히 탁한 것들을 내려놓으면, 맑고 투명한 삶이 그 자리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디는 것을.
비워야 채워지고, 버려야 얻는다는 진실을 이제는 경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