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자라는 은행나무를 보며
가을에는 은행나무에서 발하는 노란 색깔이 마냥 좋다.
맑다 못해 투명한 노란 은행잎을 바라보면 마음도 노랗게 변한다.
바람이 불면 우수수 떨어지는 은행잎.
은행잎을 비처럼 내리면 그 밑에서 감성을 내뿜으며 함성을 지르는 여심을 본다.
어느 날 책장을 펼치다 발견하는 은행잎에서 추억을 회상해 본다.
어느 여인이 선물로 준 책갈피에서 은행잎을 발견했다.
은행잎이 담긴 페이지에는 '클리프 리처드의 에버그린 트리' 가사를 적은 종이가 곱게 접혀 있었다.
영원을 함께 하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친 탓에 그리움만 남았다.
도시에는 은행나무가 천덕꾸러기가 되어 가고 있다.
가을이면 거리에 떨어지는 은행알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 탓이다. 지난겨울에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은행나무 가지를 무참하게 자르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이쑤시개처럼 앙상하게 남은 기둥만 덩그렇게 서있는 은행나무. 보는 이들이 안타까워한다. 아파트 단지뿐만 아니라 거리에 있는 은행나무 가로수는 가지가 모조리 잘려나갔다.
가을이면 거리나 아파트에 있는 은행나무는 괄시를 받는다.
노란 은행잎을 바라보는 감성은 식은 지 오래되었으며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아우성이다. 떨어진 은행알은 행인들에게 밟히고 으깨지며 역겨운 냄새는 더하다. 전에는 은행알을 줍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마저도 없다. 도시에 있는 은행알은 중금속에 오염되었다는 엉뚱한 소문 때문이다. 은행알에는 검사 결과 중금속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오히려 냄새나는 은행나무를 가로수에서 배제시키라는 민원만 쌓일 뿐이다.
봄이 되어 이쑤시개처럼 된 은행나무에서 잎들이 힘겹게 나오고 있다.
풍성했던 잎들은 볼 수 없고 앙상한 줄기에 겨우 얼굴을 내민 잎들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과연 살 수 있을까? 은행나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가을에 공원 은행나무들은 노란 잎으로 단장하며 예쁨을 독차지하는데 거리와 아파트에 있는 은행나무는 잎 가장자리에 갈색 무늬가 생기며 병든 모습이 역력하다.
공원에는 은행알을 줍는 할머니가 계시다.
장갑을 끼고 열심히 줍다 보면 한 바구니가 된다. 은행잎은 약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가을철에는 제약회사에서 은행잎을 모아 혈액순환을 개선하는 약을 만든다. 전에는 우리나라에 은행잎이 풍부했으나 지금은 은행잎을 외국에서 수입한다. 점차 은행나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고대의 식물로 현존하는 나무 중 가장 오래되었다.
오직 1종만 존재하므로 살아있는 화석으로 취급되며 병해충에 강한 특징이 있다. 은행알은 역겨운 냄새로 인해 다른 동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은행알을 먹고 심을 뿐이다. 은행나무를 번식하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인간도 은행나무를 기피하므로 은행나무가 멸종 위기에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용인에 은행나무숲이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민둥산에 은행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은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다. 이곳에서 나오는 은행잎과 은행알 역시 유용가치가 높다. 은행나무가 장차 멸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이들을 지키고 싶은 이병철 회장의 배려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