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

_감정은 보내지 못한 편지처럼 남는다

『손편지』

― 감정은 보내지 못한 편지처럼 남는다



서랍 안쪽, 잘 열리지 않는 칸에서

낡은 편지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한동안 열지 않았던 서랍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 편지는

더 오랫동안 누군가의 손을 타지 않았던 것 같았다.



봉투는 누렇게 바랬고,

풀칠 자국은 거의 희미해져 있었지만

기묘하게도 접힌 선은 뚜렷했다.

마치 그 선들만은 시간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던 것처럼.


아무 주소도, 발신인도, 우표도 없었다.

단지, 펜으로 쓴 짧은 문장 하나.

“전해지지 않더라도, 나는 이걸 썼다.”



나는 잠시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봉투를 열었다.


종이 위에 적힌 글씨는 익숙했지만,

내용은 낯설었다.

오히려 너무 낯설어서

한때 나였던 누군가가 쓴 것 같기도 했다.



“그날 나는 두 번 숨을 참았다.

한 번은 울지 않기 위해서,

다른 한 번은 말하지 않기 위해서.”



“이 계절이 다시 오면,

나는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문장들이 흐릿하게 이어졌다.

직접적인 이름은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 문장은 문장이기를 멈추고

기억과 감정 사이의 중첩된 흔들림이 되었다.



나는 그것이 나에게 쓰인 것인지,

내가 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감정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닐까.

처음엔 분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방향을 잃고

보내려던 것도, 받으려던 것도 흐릿해지는 것.



글씨는 종이에 박혀 있었지만

그 안의 감정은 이미 오래전에 떠난 듯했다.


남아 있는 건 말이 아니라

말의 그림자 같은 것들.

마치 파도 소리를 그린 선율처럼,

실체 없이 남은 여운만이

종이 위를 떠돌고 있었다.



나는 편지를 다 읽고

다시 조심스럽게 접었다.


그건 버릴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되돌릴 수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는 감정.



단지,

그렇게 써두는 수밖에 없는 감정.

말해지지 않은 감정,

보내지지 않은 진심.


그러나 한때,

누구에게든 전해지고 싶었던 것.



나는 봉투를 다시 서랍 안에 넣었다.

딱 맞게 닫히는 서랍 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리고 나는,

방 안에 혼자 앉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편지에 대한

가장 정중한 응답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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