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3. 23:49
수와님,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 이런 글을 쓴다고 해도.
수화님과 댓글을 주고받다가 결혼 이야기가 나왔어요. 수화님이 "나이가 많아서 애들을 둘 둘 수 있을까요? 형제 둘 두기는 무리겠죠"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순간 댓글창에 "앗 수와님 죄송합니다. 연세가 많은 줄도 모르고..."라고 쓸 뻔했어요.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칫했죠. 아, 이런 말 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급히 지우고 평안하시라는 인사말로 대신했네요.
왜 그랬냐고요? 며칠 전 우리 아내가 겪은 일이 생각나서요. 그 일을 생각하니 괜히 말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아내 이야기를 해보자면, 처녀 적엔 정말 날씬했어요. 키가 165센티미터 정도에 몸무게가 50킬로도 안 됐거든요. 뭐 약간 글래머스하긴 했지만 제 눈엔 콩깍지가 껴서인지 참 날씬하고 예뻐 보였죠. 걸어가는 뒷모습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렸으니까요.
결혼하고 첫째 낳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어요. 임신 중에도 적당히 늘었다가 출산 후에는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거든요. 모유 수유를 하니까 살이 저절로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둘째를 가졌을 때부터 문제가 시작됐어요. 첫째 때와는 확연히 달랐거든요. 임신 초기부터 입덧이 심해서 못 먹더니, 입덧이 끝나고 나서는 그동안 못 먹은 걸 보상받겠다는 듯이 닥치는 대로 먹기 시작했어요.
"임신 중이 제일 행복해"라면서 하루 종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마음대로 먹어볼 수 있겠어"라면서 과자, 떡, 빵, 아이스크림 가리지 않고 먹어댔죠.
저야 내버려 뒀어요. 임신중독증이란 무서운 말도 주위에서 들었고, 산후우울증이니 뭐니 하는 무서운 것들에 대한 얘기를 들으니까 차라리 아내가 행복해하는 게 낫겠다 싶었거든요. 스트레스받는 것보다는 좋은 거 아닌가 싶어서.
그런데 문제는 출산 후였어요. 첫째 때처럼 살이 빠지지 않는 거예요. 모유 수유를 해도 안 빠지고, 아이 돌봐서 바빠도 안 빠지고. 오히려 밤에 아이 때문에 잠을 못 자니까 야식을 자꾸 찾더라고요.
"나 왜 이렇게 살이 안 빠지지?"라면서 매일 체중계 앞에서 한숨 쉬는 아내를 보니 미안했어요. 그렇다고 "살 좀 빼라"라고 할 수도 없고. 괜히 그런 소리 했다가는 제가 죽을 수도 있거든요.
그러던 차에 사단이 벌어진 게 며칠 전 동네 스파랜드라는 거창한 이름의 찜질방에서였어요. 요즘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는 그런 곳 말이에요.
아내가 오랜만에 찜질방 가서 때도 밀고 사우나도 하고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집에서 아이들 돌보느라 지쳤으니 좀 쉬다 오라고 했죠.
그런데 탕에 들어가자마자 문제가 시작됐어요. 우리 아내가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갔는데, 자꾸 옆에서 어떤 분이 힐끗힐끗 쳐다보더래요.
처음엔 그냥 무관심하게 넘어갔대요. 찜질방에서야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쳐다볼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계속 쳐다보니까 좀 이상하긴 했대요.
그러더니 이제는 대놓고 옆으로 와서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같이 교대로 때 밀어드릴까요?"라면서. 그것도 모자라서 아내가 얼굴에 바르는 영양팩에도 관심을 보이고, "그거 어디 제품이에요? 좋은 것 같네요"라면서 자꾸 말을 시키더래요.
아내는 귀찮기도 하고 해서 "때는 괜찮습니다"라고 정중히 거절하고, 영양팩은 그래도 좀 덜어줬대요. 찜질방에서 만난 사이니까 인정상 아주 무시할 수도 없고 해서요.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물어보더래요. "혹시 임신 중이세요?"
순간 우리 아내가 얼어붙었대요. 임신? 나를 보고 임신했다고?
아내 나이가 서른 넷이거든요. 젊어 보이지도 않는데 요즘 고령 임신이 많다 보니까 그렇게 생각했나 봐요. 아니면 정말 배가 그렇게 나와 보였나 봐요.
아내가 "아니요!"라고 냉정하게 대답했대요. 목소리가 좀 날카로웠을 거예요. 당황스럽고 기분도 좀 상했을 테니까.
그랬더니 그분이 한 말이 정말 촌철살인이었어요.
"아 죄송해요. 배 나오신 것도 속상하실 텐데 제가 그런 말까지 해서...
정말 기분 나쁘시겠어요.
저도 애 낳고 나서 살이 안 빠져서 스트레스인데,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해요."
허걱. 이게 뭔 소리예요. 사과한다면서 더 큰 상처를 주는 거 아닌가요. 배 나온 것도 속상하실 텐데라니. 그럼 정말 배가 많이 나와 보인다는 소리잖아요.
우리 아내가 집에 와서 그 얘기를 해주는데 목소리가 좀 떨리더라고요. "여보, 내가 정말 임신한 것처럼 보여?" 하면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안 그래, 예뻐"라고 하면 거짓말 같고, "조금 살쪘긴 했지"라고 하면 더 상처받을 것 같고.
결국 "그 사람이 이상한 거야. 당신 전혀 안 그래"라고 했는데, 아내가 "거짓말"라면서 씁쓸하게 웃더라고요.
그래도 그날 아내가 그냥 쿨하게 넘어간 게 다행이었어요. 그나마 그분이 순진해서 악의 없이 한 말인 게 티가 났거든요. 만약 일부러 그런 말을 했다면 우리 아내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아내 성격을 아는데, 정말 무서운 사람이거든요. 여태껏 제가 살아있는 게 기적이에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생각해 보니 순진한 분들이 가끔 이런 촌철살인적인 말을 하시더라고요. 악의는 없는데 결과적으로는 더 큰 상처를 주게 되는 거죠.
나이 얘기도 마찬가지예요. "나이가 많아서"라고 스스로 말씀하셨다고 해서 "아, 연세가 많으시군요"라고 맞장구치면 그게 상처가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수화님께 그런 비슷한 실수를 할 뻔했던 거예요. 다행히 아내 일이 생각나서 말을 멈췄지만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나이나 외모에 관한 얘기는 더더 욱요. 본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고 해서 우리도 함부로 맞장구치면 안 되는 거 같아요.
말이란 게 참 무서운 것 같아요. 한 번 내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상대방 가슴에 상처로 남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 아내도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동안 우울해했어요. 거울 보면서 한숨 쉬고, "정말 내가 그렇게 뚱뚱해 보이나"라면서. 보는 제 마음도 아프더라고요.
천수답에서 비를 기다리는 제사장 올림.
수와님, 따뜻하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글이 수와님께는 또 다른 촌철살인적인 글이 될까요? 혹시 그렇다면 바로 삭제할게요.
말조심,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평안하시길.